[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박상기의 난'을 기억하십니까.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초,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거래소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가상 증표' 정도가 맞다"며 "투기가 극심해 버블이 붕괴하면 개인 피해가 막대하다"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발언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했고, 이 발표는 '박상기의 난'으로 불리며 가상자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법무부뿐만이 아닙니다. 이 시기 금융위원회도 가상화폐를 아우르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밖으로 치부했습니다. 당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현재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가상통화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음 사람이 내가 원하는 가격에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며 "다분히 다단계금융(폰지형) 사기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재인정부는 '가상화폐는 금융자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제도 정비보다는 규제에 집중했습니다. 이 시기 정부는 부동산 시장과도 싸우고 있었습니다. 집값 안정을 위해 수십 차례의 대책을 발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5년간 2배 이상 올랐고, 대출 규제 강화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더 멀게 만들었습니다. 국민의 자산 형성과 관련된 대표적 정책에 실패하면서 20·30세대가 등을 돌렸고, 정권 교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돌고돌아 이재명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바뀌지만, '늘공(늘 공무원)'인 관료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 금융위 국장이던 인사가 차관급까지 올라갔고, 금융위 부위원장이던 인사는 지금 대통령실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상화폐가 자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에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세가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의 한 관료는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분야에서 쓰이는 걸 보고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실물시장에서 쓰임이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쓰임이 있지 않는가. 특히 동남아 시장에서는 한국 금융사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망으로 승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되어 가격이 안정된 디지털 자산입니다. 그의 말처럼,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거래 대상이 아니라 결제·송금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언만 보면 가상자산을 보는 그들의 시각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부연 설명은 이렇습니다.
"국민 정서를 모르고 투기냐 투자냐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라.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주식이나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돈을 벌고 싶은 기본적 욕망을 무시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문 정부 때처럼 정권 유지에 실패할 것."
부동산 대책이나 대출 규제에 있어서는 '문재인정부 시즌 2'라 불릴 정도로 판박이지만, 가상자산이나 주식 투자에 대한 접근은 전향적입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여당과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재명정부는 또 다른 축으로 '생산적 금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흐르던 자금을 혁신 산업과 신기술, 벤처 투자로 돌리겠다는 구상입니다. 자사주 소각, 상법 개정 등이 추진되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을 공언했는데, 현재 4000선 문턱까지 왔습니다.
'부동산 말고 주식에 투자하라는 것이냐'는 말도 나옵니다.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해 우는 사람들에게 주식과 코인이라는 사탕을 준다는 표현입니다. 완전히 들어맞는 표현이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출세를 위해 불법을 일삼는 형사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 맞지요?"라는 부하의 질문에 그는 "지금 이 마당에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냐.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게 중요하지"라고 했습니다. 경제의 실질적 성장 없이 만들어진 부의 착시는 언젠가 꺼지게 마련인 거품입니다. 욕망을 다스릴 수 있도록 기업의 성장과 혁신, 고용 창출이 수반돼야 할 것입니다. 욕망의 끝이 파국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23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장중 3900선을 돌파하며 4000을 목전에 뒀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