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금산분리 완화’ 청구서에 당정 검토

한경협, 정부에 ‘제도 개선 과제’ 20건 건의
기업형 벤처캐피탈·지주회사 ‘규제 개선’도
“완화 필요” VS “악용 사례 발생” 학계 ‘팽팽’

입력 : 2025-11-13 오후 12:55:52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원칙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재계가 이와 관련한 제도 개선을 정부에 건의하고 나섰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재계의 측면 지원의 공이 컸던 만큼 일종의 청구서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반도체, AI 등 첨단산업 육성에 들어갈 천문학적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인데, 학계의 시선은 엇갈립니다
 
서울 도심에 입주한 기업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 여당은 AI 등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다만금산분리 원칙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직접 펀드를 조성·운용하는 GP(운용사방식 도입에는 신중한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선 12일 한국경제인협회도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과제’ 20건을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했습니다. 기업형 벤처케피탈(CVC)·기업성장집합투자지구(BDC)에 대한 제도 개선, 지주회사 규제 합리화, 정책금융 인프라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중 핵심은 지주회사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요구입니다
 
금산분리는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가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재벌 그룹의 금융사 소유를 금지해, 기업이 금융자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기업의 리스크를 금융으로 전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또한 금융기업이 고객 예금 등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AI로 촉발된 산업 대격변 시대를 맞아 대규모 자금 조달이 불가피해지면서 효율적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1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AI 투자) 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재원을 조달할 때 독점의 폐해가 없다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한 바 있습니다. 
 
한경협은 이러한 규제가 지주회사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산업과 금융 간 협력 투자 및 혁신적 자본 운용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폐지하고 지주회사가 단기적으로는 여신금융사, 장기적으로는 금융사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는 단계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또한 CVC 자금조달, 투자 대상 규제를 합리화하고 BDC의 참여 주체를 확대해 민간 자본이 보다 원활하게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학계 등 전문가의 시선은 엇갈립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육성을 위해 금산분리를 다소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AI 투자와 금산분리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재벌가의 꼼수라는 반대 의견도 팽팽합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법 등 기업 내부적으로 통제 시스템을 갖도록 법이 개정돼 기업이 욕심을 위해 금융을 활용하는 것은 많이 제약된 상황이라며 금산분리의 경직된 운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기업들이 AI 투자를 위해 지주사 아래에 펀드를 두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제 필요한 사항일 수도 있다투자자 보호 등 맞춤형 규제와 보완 입법이 같이 간다는 전제 하에 완화를 해줘도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반면,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벌 기업이 승계를 앞두고 금융회사 타이틀을 갖는 회사를 설립하고 일감 몰아주기로 키우는 등 악용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하다“AI와 관련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면 컨소시엄을 만들거나 신디케이트론등을 활용하면 될 일로 재벌과 연관된 사안이라 규제 완화는 불가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도 “AI 대규모 투자는 금산분리 완화랑 아무 연관이 없다대기업집단이 금융회사를 소유하는 형식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바꾸려는 목적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여 완화에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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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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