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일회용 종이컵은 단순한 편의용품을 넘어 생활의 필수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커피 소비가 활발한 우리나라에서는 종이컵이 편리함을 넘어 ‘위생적’인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석화학 및 환경독성학 분야의 비약적 발전은 ‘종이’ 컵이 실제로 복합 플라스틱 용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친환경적인 셀룰로오스 펄프로 보이지만, 액체의 침투를 막기 위해 내부는 소수성 고분자 화합물, 즉 플라스틱 필름으로 코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회용 종이컵의 내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소재는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입니다. 이 물질은 값이 싸고 가공이 쉬우며 우수한 차단성을 제공하지만, 고온 환경에서의 안정성은 취약합니다.
내수성을 높이기 위해서 쓰이는 저밀도 폴리에틸렌 때문에 종이컵이 복합 플라스틱 용기에 가깝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연구는 이런 열적 취약성이 가시적인 파손이 아닌, 미세 영역에서의 입자 방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지난 2022년 4월 NIST 크리스토퍼 장마이스터(Christopher Zangmeister) 박사 연구진이 학술지 <환경 과학과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일반적인 일회용 소비자용 플라스틱 제품이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리터(L)당 100나노미터(㎚, 10억분의 1m) 미만의 나노입자를 수조 개 방출한다’였습니다. 종이컵을 사용해 커피를 마실 때 수조 개의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들이마시게 된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음료, 통상적으로 85°C에서 95°C 사이의 액체가 컵 내부에 담길 때, LDPE 필름은 즉각적인 열충격을 받게 됩니다. 고분자 사슬은 열에너지에 의해 운동성이 증가하며 이완 과정을 겪는데, 이 과정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거나 표면의 마모가 가속화됩니다.
고온서 미세플라스틱 폭발 증가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분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음료를 담는 순간부터 불과 15분에서 20분 이내에 급격하게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소비자가 커피 한 잔을 여유 있게 마시는 시간 동안 컵 내부에서는 활발한 플라스틱 분해 및 용출 반응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물의 온도가 50°C에서 95°C로 상승함에 따라 미세플라스틱의 방출량이 약 1.5배 증가하는 경향을 확인했습니다. 40°C를 기점으로 입자 방출량이 급격히 증가해 100°C 부근에서 정점에 이른다는 NIST의 데이터는 뜨거운 음료를 마실 때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분석 방식이 달라 수치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튀르키예 연구진이 학술지 <Foods>에 2024년 5월 발표한 연구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일회용 컵의 미세플라스틱 방출량을 분석하기 위해 시중에서 흔히 쓰이는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폴리에틸렌(PE) 코팅 종이컵, 발포 스티렌(EPS) 등 4가지 일회용 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음료 조건을 재현해 실험했습니다. 4℃ 냉수부터 50℃ 미온수, 80℃ 뜨거운 물까지 온도를 달리하고, 음료가 컵에 머무는 시간도 0분에서 20분까지 조절했습니다. 결과는 온도가 오를수록, 컵에서 떨어져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NIST 연구진은 물을 가열할 때 종이컵 내부의 코팅에서 수조 개의 나노 입자, 즉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지=미국 NIST, N. Hanacek)
전자현미경(SEM)으로 뜨거운 물을 부은 컵의 표면을 확대해보니, 겉은 멀쩡해 보이는 컵 내부가 균열·파편·찌꺼기로 가득했습니다. 미세한 ‘긁힌 자국’과 ‘파편 흔적’이 표면을 뒤덮고 있었고, 이것이 그대로 음료로 떨어져 나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적외선 분광 분석(FTIR)에서는 컵 자체의 고분자 구조는 변하지 않아, 화학적 분해가 아니라 ‘표면 마모’ 방식으로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세플라스틱 수는 126개/L에서 1420개/L 사이였으며, 가장 높은 수치는 PP(50°C, 20분)에서, 가장 낮은 수치는 PE 코팅 종이컵(4°C, 0분)에서 각각 관찰됐습니다. 사용 전 컵을 깨끗한 물로 씻으면 미세플라스틱 방출량이 52~65% 줄었습니다.
두 연구의 미세플라스틱 수치에서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것은 분석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수십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크기의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 분석 방식이나 에어로졸 분석 기법을 응용해 용액 속의 나노 입자를 건조시킨 후 그 수와 크기를 측정하느냐에 따라 수천억 배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NIST의 연구에서 일반적인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에서 용출되는 나노 입자의 수는 리터당 수조(trillions) 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입자들의 평균 직경은 30nm에서 80nm 사이로, 이는 인간의 세포막을 통과하거나 세포 내 소기관에 침투하기에 충분히 작은 크기입니다. NIST 장마이스터 박사는 입자의 밀도가 “인체 세포 7개당 1개의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존재하는 수준”이라고 비유하며 그 심각성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이물질을 섭취하는 수준을 넘어, 생체 내에서 입자가 세포 단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농도에 도달했음을 시사합니다.
종이컵 사용 자제 강력 권고해야
물론 이런 수치들을 인용해서 공포심을 조장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는 미세플라스틱이 환경과 건강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이해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가는 실천적 노력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종이컵은 더 이상 안전하고 순수한 종이 용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것이 얇은 플라스틱 막으로 코팅된, 뜨거운 물을 만나면 수조 개의 나노 입자를 뿜어내는 화학적 반응 용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커피 한 잔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입자들을 들이켜고 있으며, 이 입자들은 우리의 혈액을 타고 뇌와 태반으로 이동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 텀블러나 머그잔을 쓰는 것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 행동일 뿐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수단입니다. 특히 임신부나 어린이와 같은 민감 계층에게는 종이컵 사용 자제를 강력히 권고해야 합니다. 과학적 데이터를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용기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