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넘보는 '환율 습격'…실물경제 '충격파'

원·달러 환율, 1477.1원 마감…7개월만 '최고'
외환당국·국민연금 협의체 구성…"외환 안정"
고환율 리스크에…고물가·고금리 악순환 우려

입력 : 2025-11-24 오후 4:52:12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외환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고공 행진하던 환율은 1470원대마저 뚫으며 1500원 턱밑까지 바짝 다가섰습니다. 달러 강세가 장기화하면서 원화 실질 가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대외 불확실성과 수급 문제가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는데, 문제는 최근 원화 약세의 흐름이 이전 양상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이 큰 데, 뿌리내릴 경우 고물가는 물론 고금리 등 악순환으로 이어져 실물경제 타격이 우려됩니다. 정부는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큰손'인 국민연금과 협의체를 구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공조 체제를 본격화했습니다. 
 
증시 호조·경상 흑자에도...해외 투자 급증에 꼬인 달러 수급
 
24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주 147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6원 하락한 1472.0원으로 출발했지만, 장중 상승세를 이어가며 1.5원 오른 1477.1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4월9일(1472.0원)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입니다. 환율은 지난 10월 초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 달 반 만에 1500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번주에도 외국인의 증시 추가 매도 여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시그널 등을 주요 변수로 꼽으며 1490원대까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입니다.
 
최근 환율이 급등한 것은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데다, 원화와 동조성이 높은 엔화 가치도 약세를 보이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등 자금 유출에 대한 구조적 요인의 이유가 컸습니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등 달러 유입과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에도 불구하고 해외 증시 투자를 위한 달러 환전 수요가 더 크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통상 증시가 상승하면 환율은 내려가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 환율은 하방 압력은 받지만, 최근엔 이 같은 공식이 깨졌습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은 2조7976억달러로 1158억달러 증가했습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를 의미하는 대외금융부채는 1조7414억달러에 그쳤습니다. 전 분기 대비 900억달러 증가했지만 자산 증가 폭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해외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 급증이 원화 약세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꼽힙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힘 못 쓰는' 원화 최약체로 전락…물가·금리 불안 '꿈틀'
 
원화 약세가 가파르면서 원화의 실질 가치도 추락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89.09로, 한 달 전보다 1.44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비상계엄 여파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컸던 올해 3월(89.29)보다 낮습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기도 합니다. 실질실효환율은 국가별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2020년(100)을 기준으로 100 미만이면 해당 통화의 가치가 낮다고 봅니다.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중 한국은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고, 한 달 하락 폭(-1.44포인트)은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컸습니다. 
 
문제는 고환율 흐름이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키우면서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82(2020년=100)로 전월 대비 0.2% 상승하며 두 달 연속 올랐습니다. 고환율 영향이 기초 물가 지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산자물가 상승 배경은 고환율로 수입 원재료 비용이 늘어난 데 있는데, 결국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생산 비용을 높여 공산품·가공식품·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수입물가도 4개월 연속 상승했습니다. 10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1.9% 오른 138.17로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을 기록했습니다. 수입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국제 가격 변동이 없더라도 원화 기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광물·곡물 등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환율의 영향은 더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수입물가 수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금리도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21일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271%로 거래를 마쳤는데, 4월 말 금리인 2.563%와 비교하면 0.7%포인트 이상 올랐습니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채 금리를 끌어올립니다. 실제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 8월14일 2.498%에서 21일 기준 2.791%까지 올랐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정작 시장금리는 치솟은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환율이 하락할 뚜렷한 요인이 없다고 보고 1500원대 진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기관 간 협의체를 공식 가동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은 이날 첫 실무회의를 열고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출범시켰습니다. 협의체는 앞으로 수시 회의를 열면서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이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당국과 통화스와프, 환 헤지 등을 통해 원·달러 환율 하향 안정화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477.1원으로 집계된 24일 서울 중구 명동의 사설 환전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환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박진아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