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4일부터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내 소위원회(소소위)를 가동, 내년도 예산안을 밀실로 집어넣었습니다. 법적 근거도, 속기록도 없는 비공식 협의체에서 수조원대 예산이 깜깜이로 결정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지역구 챙기기성 '쪽지예산'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회 안팎에서 꾸준히 소소위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오지만 20년 가까이 내려온 구태가 끊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깜깜이 소소위 본격 가동
여야가 이날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8일 앞두고 국회 예산결산특위 소소위를 가동했습니다. 소소위는 소위 심사에서 여야 간 입장차로 보류된 쟁점 예산에 대한 최종 조율을 하는 비공식 협의체입니다. 한병도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민주당 이소영·국민의힘 박형수 의원, 기획재정부 2차관 등이 참여합니다.
문제는 이곳에서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심사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8년 이후 매년 관행적으로 가동되는 소소위는 현행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습니다. 속기록이나 회의록이 남지 않아 소위 '깜깜이', '짬짜미' 예산 심사의 온상으로 지목됩니다.
올해 '보류'로 소소위에 넘어간 예산안은 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아동수당 사업 2조4822억원 △대미 투자지원 정책금융 패키지 1조9000억원 △지역사랑상품권 1조1500억원 △국민성장펀드 1조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1703억원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82억5100만원 등을 놓고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특히 소소위 심사 대상엔 이재명정부 핵심사업이 다수 들어가 여야의 줄다리기는 더욱 팽팽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당은 정부안 방어를, 야당은 예산 삭감을 주장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다만 정부가 확장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만큼 내년도 예산안 증액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국회 예결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상임위에서 의결한 증액 규모만 34조9000억원이라고 날을 세우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삭감 없이는 증액이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시한 합리적인 삭감 근거와 주장을 무시한 채 삭감에 반대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내 소위원회(소소위)가 24일 시작됐다. (사진=뉴시스)
깜깜이 비판에도…법 위 '상임위'
정책보다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끼워 넣는 '쪽지예산' 위주의 증액이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지역 챙기기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대선을 앞뒀던 지난해 소소위에서 속기록 없이 100억원 이상 증액한 사업은 79개에 육박했습니다. 이중 지역구 챙기기 성격이 짙은 철도, 도로 같은 사회 기반 시설 사업만 16개입니다. 사업당 평균 175억6000만원씩 늘었습니다.
쪽지예산의 난립은 재정 건전성 확보엔 독약입니다. 기재부가 지난 13일 내놓은 월간 재정동향 11월호에 따르면 올해 1~9월 정부 관리재정수지는 102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월별 관리재정수지 집계가 시작된 이후 2020년(1~9월) 108조4000억원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입니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비단 예결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소위도 '보류' 의견을 받은 조세안이 소소위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기재위 조세소위 소소위는 오는 27일 열릴 예정입니다. 예결위와 동일하게 여야 간사와 기재부 관계자가 참석합니다.
기재위 소속 한 의원은 <뉴스토마토>에 "(조세소위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닌 여야 합의로 진행하는 방식"이라며 "이견이 있는 안건도 합의에 이르기 위해 충분히 논의하고 소소위로 넘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 안팎에선 깜깜이 예산 논의를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현행법을 위반한 부당지급 예산은 약 2520억원 규모에 달합니다. 당시 감사원은 소소위에 대해 "소수만 참석하는 비공식 협의체"라며 국회 예산 심사 제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관련해 국회법 개정 움직임도 있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습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난해 8월 상임위원회의 예산 심사 권한을 강화해 예결위의 졸속 심사를 막는 법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다만 해당 법안은 1년 넘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국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민형배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상임위 권한 강화는) 평소에 해오던 얘기"라면서도 대안 법안 입법 가능성에 대해 묻자 "법안 발의 이후에도 별 반응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