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이재명정부가 국정 과제로 제시한 동물병원 표준수가제 도입 논의가 장기화되면서 펫보험 활성화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전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 역시 펫보험 활성화를 국정 과제로 삼은 만큼 손해보험업계의 기대가 큰 상황입니다. 그러나 수의사들의 강한 반발로 펫보험 활성화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물병원 진료비 '천차만별'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동물병원 진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익형 표준수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익형 표준수가제는 진료 항목별로 비용을 표준화해 병원 간 진료비 격차를 완화하는 제도입니다. 동물병원마다 제각각이던 진료비를 일정 수준으로 통일해 반려동물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입니다. 일부 진료 항목에 수가를 적용해 공공동물병원에서 시범 운영한 뒤, 이를 도입하는 민간 동물병원을 '상생동물병원'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현재 동물병원 진료비는 지역과 병원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동일한 질환이나 시술이라도 병원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 보험사는 평균 손해율을 산정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개한 동물병원 진료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진 진찰료가 최저 1000원에서 최고 6만원까지 형성돼 병원 간 편차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사들은 정부의 공약을 반기고 있습니다. 현재 펫보험은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편차가 크기 때문에 보험료를 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입니다. 표준수가제가 도입돼 진료비 격차가 줄어들면 보다 안정적으로 보험료와 담보를 설계할 수 있고, 소비자가 가입할 만한 매력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큽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동물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크기 때문에 보험사도 어떤 금액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며 "현재 펫보험 보험료가 상당히 비싼데 여기엔 보험사의 리스크 헷지 비용이 들어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표준수가제로 진료비가 보다 투명해지면 보험료도 낮출 수 있고 보장도 더 늘어날 것"이라며 "수가제 도입 없이는 펫보험 활성화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펫보험 가입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년 내 반려동물 치료비를 지출한 가구는 전체의 70.2%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부담한 평균 치료비는 102만7000원으로 지난해(57만7000원)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해 펫보험 가입 유인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펫보험 가입률은 여전히 1~2%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가입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보험료 때문입니다. 보장 항목이 제한적이고 면책 기간도 길어 소비자들이 쉽게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려동물 나이가 5세만 넘어가도 월 보험료가 4만~5만원 수준으로 사람 보험보다 비싼 경우도 많습니다.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펫보험 활성화 개편안도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개편안은 펫보험 재가입 주기를 1년 갱신으로 단축하고 보장 구조를 보장70%·자기부담30% 체계로 재편한 것이 골자입니다. 계약을 수시로 점검하고 문제가 된 상품을 빠르게 손질하겠다는 구상이지만 보험사와 가입자 모두에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매년 갱신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갱신 때마다 보험료 인상, 보장 축소, 재가입 거절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보험사도 1년 단위로 손해율이 변동되면 상품 수익성 관리에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표준수가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권익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질병명과 진료행위 등 명칭을 표준화하고 동물병원이 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과잉진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동물병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표준수가제 논의 수차례 무산
표준수가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에도 표준수가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수의사 단체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정재호 전 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에서는 허은아 전 국민의힘 의원이 표준수가제 도입을 담은 수의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됐습니다.
지난 9월에는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표준진료비 상한액을 설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수의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동물병원 운영비와 동물의약품 가격 등을 고려해 대한수의사회, 동물보호단체, 소비자단체 등과 협의해 상한액을 정하고 매년 검토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대한수의사회는 동물 진료가 본질적으로 민간 서비스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가 진료비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시장의 자율성과 수의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과도한 가격 규제가 장비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결국 진료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농식품부 역시 진료비 편차를 완화할 제도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진료비 상한제를 의무화하는 방식보다는 자율적으로 준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상한제를 준수한 동물병원에 행정·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제도 확산을 유도하는 방식이 보다 적절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