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시민영웅'이 지켜낸 민주주의

입력 : 2025-12-03 오후 3:35:16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박종철·김혜경씨는 2024년 12월3일 계엄령 소식을 접하자, 여의도로 향했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대학 시절 계엄을 겪었던 박씨는 "당시 정말 우리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다"면서 "국회 도착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좀 안심이 됐다"고 했다. 평범한 20대 청년 송예은씨는 우연한 계기로 남태령 집회에 참여하면서 '말벌 시민'이 됐다. 말벌 시민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집회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시민들을 일컫는다. 송씨는 말벌 시민으로 활동하면서 '연대'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2일 저녁 용산 CGV에서 상영된 다큐 <시민영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내달렸다. 다큐는 비상계엄이 선포 당일 12월3일 당시 국회를 지켜낸 시민들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국회, 광화문, 남태령에서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거대담론이나 정치적 편향은 없다. 그날 밤, 그때, 이 사람이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에 대한 질문만 따라간다. 내래이션은 없다. 음악도 최소화했다. 억지로 감동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비상계엄 이후 대한민국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다큐는 광장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주목한다. 처음에는 일반 시민들이 모였지만 점차 주거 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들,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성소수자, 진실 규명을 외쳤지만 외면당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등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들이 광장에 나왔던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랐다.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보할 수 있다는 기대를 담은 행동이었다. 최근 10여년간 유난히도 잦은 참사를 경험했던 한국의 시민사회 구호 메시지가 '기억하겠습니다'에서 '연대하겠습니다'로 바뀌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연대한 시민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교훈이 재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12월3일 이재명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성명을 통해 이날을 '국민주권의 날'이라 칭하며 법정공휴일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저들은 크게 불의했지만, 우리 국민들은 더없이 정의로웠다"며 "담대한 용기와 연대의 빛나는 힘을 보여주신 위대한 국민에 깊이 감사한다"고 전했다. 폭력이 아닌 춤과 노래로 불법 친위 쿠데타가 촉발된 최악의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든 것은 바로 국민이라고 평하며 "법정공휴일로 정해 국민들이 1년에 한 번쯤 이날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회상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산 자를 돕기 위해 죽은 자의 기억이 필요하며 기억된 과거만이 현재를 구할 수 있다. 다큐는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들의 한 기록이자 한 단면이다. 2025년 대한민국에 흐르는 민주주의 새 물결은 연대였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깨닫는다. 어떤 거대한 권력도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인 평범한 개인들의 힘을 결코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2025년 대한민국에 흐르는 민주주의의 새 물결은 바로 이 끈끈하고 희망찬 연대의 물결일 것이다.
 
이보라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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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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