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는 한 인권운동가의 회고록인 동시에, 한국 사회가 자주 외면해온 질문들을 다시 꺼내는 기록입니다. 저자 박래군은 인권이 무너진 현장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얼굴과 시간을 차분히 따라왔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의 발걸음을 이끄는 다짐은 "사람이 죽기 전에 움직이자"는 마음입니다.
박래군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부터 현재까지, 국가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1988년 동생 박래전(숭실대 재학 중 분신)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을 계기로 그는 유가족으로, 활동가로,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인권운동을 이어왔습니다. 이 책은 그 긴 인권운동 여정의 기록입니다.
그의 이름 래군은 한자로 '올 래(來)', '무리 군(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리와 어울려 데모하며 살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는 실제로도 이름대로 살아왔습니다.
1981년 연세대에 입학한 후 학내 대규모 시위를 목도하고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83년엔 4·19 시위 참여했다가 강제징집을 당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인권운동, 고난의 길이 이어졌습니다. △1985년 인천 노동운동 △1988년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활동 △1994년 '인권운동사랑방' 참여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 △2009년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지금도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책 곳곳에는 "질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싸움"이 등장합니다. 대추리 투쟁, 용산 참사, 국가폭력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까지.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면 그 고통은 기록조차 남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박래군은 싸웠고, 졌고, 그 눈물들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이 책은 그리하여 승리의 서사라기보다는 침묵에 맞선 기억의 연대기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를 다룬 부분에서 책 제목이 가장 강하게 와닿습니다. 보수 언론과 일각에선 유가족의 슬픔을 종종 '과잉된 감정'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눈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물은 인간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강변합니다. 눈물에는 체온이 있고, 그 안에 남은 온기는 아직 연대가 가능하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저자는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규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2017년 세월호 인양 후 선체조사위원회는 침몰 원인에 대해 '내인설'(선체 결함·과적 등)과 '열린 안'(외부 충격 가능성 포함)으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진상 규명도 묻혔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증거 자료가 은폐되거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국정원이 자체 보유한 세월호 자료는 약 67만건인데,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확인한 것은 0.3%인 2300건에 불과했습니다. 또 현재 사법 구조에서는 책임자 처벌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당시 '국민 보호 의무 위반'을 파면 사유로 넣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2023년 11월30일 당시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위와 4.16재단이 주최한 '재난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책에는 팩스로 신문을 발간했던 '인권하루소식', 국내 첫 인권영화제를 열었던 우여곡절, 5번이나 구속되면서 겪었던 교도소 내 인권 탄압 이야기 등 생생한 현장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지금은 당연해진 노동·인권 운동의 비하인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시위 현장에 여경이 배치된 배경이 1996년 연세대 사태(범민족대회 강경 진압 중 학생 5848명이 연행된 사건)부터였다는 사실,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에바다학교' 사건을 통해 본 장애인 인권운동 흐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과정, 4만7000원으로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 이야기 등도 흥미롭습니다.
450여쪽에 달하는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이 책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울고 있는 사람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을까? 사회는 언제부터 눈물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겼을까? 이 질문은 인권운동가에게만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 모두 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