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2025년 한국의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자동차 업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로 누리던 0%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일시적으로 25% 관세 폭탄을 맞았다가, 긴박한 협상 끝에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수조 원대 수익성 악화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각) 백악관 외교 접견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터리 산업은 더욱 참혹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9월 초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미 이민세관단속국이 한국인 300명 이상을 포함해 약 450명을 체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현지 공장 가동의 핵심인 한국 엔지니어들이 비자 문제로 구금되면서, 수조 원을 투자한 공사가 멈춰 서는 악몽을 경험했습니다.
수조원 수익 차질…최종 관세 15%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으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부터 한미 FTA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2018년 첫 임기 중 재협상을 했음에도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출이 오히려 16% 감소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반면 한국산 자동차는 여전히 0% 관세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대로 한국산 자동차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업계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연간 수출액만 수십조 원에 달하는 미국 시장에서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력은 완전히 무너지고 수조 원대 수익성 차질이 불가피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관세 충격은 즉각 실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차와 기아의 3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7.4% 급감한 4조689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저조한 수치였습니다. 현대차는 실적 발표에서 미국 관세 25% 적용으로 인한 이익 감소액만 1조5000억원 이상에 달하고, 기아 역시 1조234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수개월간의 긴박한 협상 끝에, 7월 말 백악관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습니다.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 관세는 25%에서 15%로 10%포인트(p) 낮아졌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0%에서 15%로 급등한 관세는 여전히 큰 부담이었습니다. 업계는 연간 1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경기 평택항 자동차 전용 부두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지 생산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현대차는 9월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현재 약 40% 수준인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80%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조지아주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하고 추가 증설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생산 확대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핵심 부품 상당수는 여전히 한국에서 들여와야 했고, 이들 부품에도 관세가 부과되면서 원가 상승 압박이 계속됐습니다. 게다가 미국 알루미늄 업계가 배터리 부품을 알루미늄 파생상품으로 분류해 50% 관세를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등, 부품 관세가 추가로 확대될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자동차 업계는 2025년 한 해를 관세 방어전으로 보냈고, 수익성 악화와 가격 인상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쇠사슬 체포…초유의 300명 구금
배터리 업계가 겪은 충격은 자동차 산업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관세는 그나마 협상의 여지가 있지만, 사람이 없으면 공장 자체를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인 근로자 단속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가 합작해 6조원을 투자한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막바지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배터리 제조는 극도로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생산 라인 구축, 장비 세팅, 품질 관리 등 핵심 작업은 한국에서 파견된 숙련 엔지니어들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사용한 비자 유형이었습니다. 구금된 한국인들 상당수는 단기 상용 목적의 B1·B2 비자나 전자여행허가 ESTA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미 당국은 이들이 허용된 범위를 넘어 전문 기술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체포·구금됐던 노동자들이 지난 9월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주차장에서 가족과 만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9월4일(현지시각)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현대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 급습했습니다.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 결과 불법 체류자 약 450명이 체포됐고, 그 중 300명 이상이 한국인이었습니다.
ICE의 체포 과정은 상당히 무차별적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도 공장으로 끌려가 현장직 노동자들과 함께 조사를 받았습니다. 일부 베테랑 엔지니어들은 공항에서 몇 시간씩 심문을 받거나 하루 이상 구금 시설에 억류됐습니다.
압수수색 이튿날인 5일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은 건설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막바지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던 신규 공장은 핵심 인력이 사라지면서 공사 일정 자체가 불투명해졌습니다. 배터리 생산 라인 구축은 온도, 습도, 공정 시간 등 미세한 변수를 정밀하게 설정해야 하는 초고난도 작업인데, 이를 지휘할 숙련 엔지니어들이 구금되거나 추방되면서 공장 완공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후 상황은 다소 진정됐습니다. 11월 하순 구금됐던 엔지니어 약 50명이 다시 미국으로 향했고, 당시 구금된 한국인 317명 중 100명 이상의 B-1 비자가 복원됐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9월 말부터 ESTA 신청 수수료를 21달러에서 40달러로, H-1B 비자 수수료도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 현지 사업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상태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입지에도 타격을 입었다”며 “관세가 다시 제로 베이스로 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 만큼 내년 상황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