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청탁을 ‘교단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정작 한학자 총재와의 대화에선 “어머님 지시받아서 일한 적 없다”고 말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선거자금 지원 대가로 캄보디아 최고위층으로부터 제안받은 카지노 운영권과 관련해 자신이 먼저 결정한 뒤 한 총재에게 사후에 허위 보고를 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한 총재에게 정치권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는 등 ‘지시받는 위치’라고 보기에 어려운 장면도 다수 포착됐습니다. 정치권 등 통일교의 대외 활동을 주도했던 그는 한 총재의 심기를 거슬러 통일교로부터 축출된 이후엔 돌변, 최고 실세인 정원주 전 비서실장 등에 대한 비리를 언론 등에 폭로하겠다며 한 총재와의 독대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통일교 한학자 총재(왼쪽)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사진=연합뉴스)
8일 <뉴스토마토>가 단독 입수한 한 총재와 윤 전 본부장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과거에는 아버님, 어머님 지시한 대로, 특히 아버님 다 기획하시고 지시하시면 지도자들은 아주 디테일한 지시한 것만 갖고 움직였죠. 누구 만나라 하면 만나고. 그런데 저는 어머님 모시면서 감사했던 게 제가 어머님 지시받아서 일한 적은 없다”고 윤 전 본부장이 말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얘기해서 어머님 의중을 헤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리고 한두 마디 주시면 그 가슴,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라고 이어갑니다. 한 총재의 속뜻을 헤아려 일을 했다는 것으로, 교단의 지시에 따라 일했다는 자신의 기존 주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2023년 4월11일 무렵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는 48분가량 이어지는데, 윤 전 본부장이 90% 이상 얘기하고 한 총재가 간간히 격려성 답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윤 전 본부장이 본부장직에서 쫓겨나기 약 한 달 전에 이뤄진 이날 대화에서, 자신이 제안받은 카지노 운영권 관련해 한 총재에게 말한 대목도 눈에 띕니다. “이제 오늘 말씀 나왔으니까 드리는 건데 7월에 선거래요. 훈센이 아들한테 물려주는 거죠. 그런데 이제 거기에 감찰단들 불러서 잘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선거비용을 좀 감찰단 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냐, 저한테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게 한 150만불에서 20억 가까이 되는데요. 못 한다 그랬어요. 할 수 없다. 그 대신 그거를 할 수 있는 쪽을 내가 한번 알아볼게. 오늘 아침에 또 연락 왔습니다. 옵션을 거는 거예요. 저한테.”
앞서 <뉴스토마토>는 한 전 본부장이 2023년 4월8일께 캄보디아 최고위층으로부터 선거자금 지원을 해주면 카지노 운영권 등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금 마련에 적극 나선 의혹(2026년 1월6일자 2면 참조)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위 대화가 카지노 관련 제안을 받은지 3일 뒤인 11일에 이뤄졌다는 점을 볼 때, 윤 전 본부장이 말하는 선거자금은 카지노 운영권과 관련된 자금으로 보입니다. 특히 △선거자금 지원을 통해 카지노 운영권을 거머쥐려 했다는 윤 전 본부장이 한 총재에게는 직접 지원을 거절했다고 말한 점 △캄보디아에서 지원을 요구한 선거자금이 100만달러였는데 한 총재에게는 150만달러로 보고한 점 △대화 녹취록 어디에도 카지노 운영권과 관련된 언급 없이 선거자금 지원만을 말했다는 점 등은, 윤 전 본부장이 카지노 운영권과 관련해서 통일교 윗선에 보고하지 않은 채 자금 마련에 나섰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한학자 통일교 총재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대화 녹취록. 윤 전 본부장이 "어머님 지시 받아서 일한 적은 없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대화에서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를 둘러싼 안팎의 조건이 부정적이라며 ‘정부 지원’을 통한 조직 영향력 확대 구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먼저 전년도인 2022년 7월 일본에서 벌어진 아베 신조 암살 사건을 지칭하는 듯 “7월 달에 일본의 그 사건은 디펜스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한 그는 “한국에서는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라는 프로그램이 JMS와 우리를 계속 엮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암살범이 통일교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내 여론이 악화된 점과 사이비종교인 JMS와의 관련성이 불거진 점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윤 전 본부장은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정부 내 영향력을 과시하는 발언도 나옵니다. 그는 “정부가 저한테 신세 많이 진 게 있다. 제가 욕도 많이 먹었다”며 “영부인(김건희씨) 디펜스도 제가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이날 대화에서 윤석열씨와의 친분이나 원조 ‘윤핵관’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의 다음날 약속 등을 자랑하던 윤 전 본부장은, 윤석열정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과 지원을 통해 해외 새마을운동 프로젝트 등으로 수백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다이너마이트 있다”…윤영호의 ‘돌변’
이날까지만 해도 한 총재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는 등 통일교 내 입지가 견고했던 윤 전 본부장의 권력은, 한 달 뒤 세계본부장에서 물러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통일교 안팎에선 윤 전 본부장이 캄보디아 부동산개발사업 등을 무리하게 추진한 일로 한 총재의 눈 밖에 나 밀려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교 관계자는 “윤 전 본부장이 한 총재에게 용평리조트 등 주요 통일교 자산 매각 후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전권을 요구했고, 이것이 총재의 심기를 건드려 2023년 5월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고 부인인 재정국장도 해임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지난해 1월, 선문대 부총장에서도 해임 통보를 받으며 사실상 통일교에서 축출되자 윤 전 본부장의 태도는 돌변했습니다. 해임 처분을 취소하지 않을 시 언론 제보와 검찰 조사를 통해 통일교 내부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이즈음 한 총재의 며느리로 교단 내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문연아 선학학원 이사장과 한 통화 녹취록을 보면 “제가 9년 가진 자료를 다 터트릴 건데 이를 한번 감당해보라”는 윤 전 본부장의 협박성 발언이 1시간 내내 이어집니다. 윤 전 본부장은 문 이사장에게 ‘한 총재의 지시로 짐바브웨·세네갈 대선 자금을 지원했다’, ‘대선부터 윤석열정권 어머님이 지지한 거, 대선 자금, 그리고 김건희 여사한테 어머니 선물한 거 다 진술한다’ 등 폭로 수위를 높였습니다.
한학자 총재의 전 비서실장인 정원주씨(가운데)가 지난달 28일 경찰 조사를 마친 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이날 통화에서 윤 전 본부장은 정 전 비서실장을 타깃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윤 전 본부장은 “언론에 정원주를 터트릴 건데 거기에 어머님이 묻힐 것”이라며 “10년 동안 가진 자료가 한두 개겠나. 나는 다이너마이트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정원주는 네 가지, 제가 가지고 있는 증거로 파멸이 돼야 한다. 그 금액이 100억대”라며 “내가 확실하게 아는 증거가 4개로, 4개면 징역 20년형”이라고 구체적인 비리 정황도 거론했습니다. 정 전 비서실장은 통일교의 ‘최고 실세’로, 정치권 로비와 관련해 윤 전 본부장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정 전 비서실장과 윤 전 본부장이 사실상 ‘경제 공동체’였다는 시각이 많았던 만큼 축출된 윤 전 본부장의 분노가 컸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윤 전 본부장은 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전담수사팀의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에 금품을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특검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에 금품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윤 전 본부장은 경찰 조사에서는 로비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윤 전 본부장이 경찰에 금품 전달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경찰은 특검 수사 당시 공범 혐의에 대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아 구속을 피했던 정 전 실장도 정치권 로비 의혹의 핵심 관계자로 판단하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