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미국 정부가 국민들의 성인병을 줄이기 위해 단백질 섭취를 높이고 탄수화물과 당류를 줄이는 식이지침을 발표했습니다. 2030년까지 미 정부의 지원을 조금이라도 받는 모든 기관·단체는 이에 따라 밥상을 바꾸게 될 텐데요. 그 파급력이 미국 민간 단체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어 식음료업체는 물론 제약업계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해당 기업들의 주가와 곡물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로비 뚫고 식이지침 개정…단백질 2배 섭취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보건복지부와 농무부는 ‘2025~2030 미국인을 위한 식단 지침(DGA)’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하루 단백질과 포화지방 섭취 권장량을 늘리는 한편 모든 종류의 제로 슈가를 포함한 당류, 가공식품, 음주량은 크게 줄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지목한 단백질은 달걀, 닭 등 가금류, 해산물, 붉은 고기, 유제품, 콩, 견과류 등입니다. 단백질 권장량은 기존 ㎏당 하루 0.8g에서 1.2~1.6g으로 2배 가까이 늘릴 것을 주문했습니다. 포화지방은 전지방 유제품, 소고기 지방, 버터, 아보카도 등을 통해서 전체 칼로리 대비 10% 이내 비중으로 권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국가식이지침은 미국 정부가 5년 주기로 개정해 배포하는 것으로, 향후 5년간 즉 2030년까지 미국인들의 식단을 제시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함께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 Make America Healthy Again)’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번 지침은 대선 공약을 이행한 것입니다.
미국에선 탄수화물 및 당류 과다 섭취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입니다. 이로 인해 매년 비만과 당뇨 등 성인병 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사이 아동 성인병 환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어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비만, 당뇨 등 만성질환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 하루에 1조달러를 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식이지침은 연방법에 명시돼 있으며 5년마다 식이지침위원회가 재검토합니다. 비만 등 성인병 증가가 최근 단기간에 진행된 것은 아니어서 주기적으로 식이지침을 개정할 때마다 수정하려는 시도는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식품업체들이 위원회에 손길을 뻗쳤습니다. 위원회 구성원 대부분이 업체들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등 업계와 관련돼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실질적으론 1980년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가 이번에 크게 바뀐 것입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보건복지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장관이 워싱턴D.C. 소재 미국 보건복지부에서 열린 정책 발표 행사에서 부처의 새로운 식이지침 발 차트를 공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AFP)
미국 정부 지침이 전 세계로?
시장이 이번 발표에 주목하는 것은 개정된 식이지침이 전 세계 밥상과 자본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국가식이지침 개정은 정부가 단순히 좋은 식단의 본보기를 권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지원을 조금이라도 받는 모든 정부 기관과 단체, 학교, 군대, 교도소 등의 단체 급식에 이 규정이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지원 프로그램(SNAP) 등 모든 유형의 공공 조달도 개정된 식이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정부의 직접 통제 범위를 벗어난 민간 기관과 단체들도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료계 종사자는 물론 영양사들에게도 식이지침이 표준이 됩니다. 따라서 속도는 느리더라도 이번 지침은 미국의 밥상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국가식이지침을 참고해 자기 나라에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이번 개정이 갖는 힘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그래프=뉴스토마토)
미 식품업계 불똥…육우업체엔 호재
이번 식이지침 개정으로 멀리 갈 것 없이 미국의 식음료 업체들의 발등엔 불똥이 떨어졌습니다. 탄수화물과 당류를 줄인다는 것은 이들이 판매하는 빵과 과자, 각종 음료수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고와 같기 때문입니다. 콜라와 제로 콜라, 가당 주스도 이에 해당합니다. 얼마나 감소할지는 이번 지침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민간에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입니다.
이와 관련된 업체들은 크래프트하인즈(종목기호 KHC), 제너럴밀스(GIS), 코카콜라(KO), 네슬레(NESN, 스위스) 등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지침에 대응해 그에 맞는 상품과 마케팅을 강화하겠지만 매출 감소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입니다.
장기적으론 식단의 변화로 성인병 환자가 감소할 경우 제약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식이지침 개정 때마다 위원들에게 직간접적인 로비를 하는 곳 중엔 제약회사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타이슨푸드(TSN), 시보드코퍼레이션(SEB) 등 육류 가공회사들은 수혜를 얻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프레시델몬트(FDP), 돌(DOLE) 등 과일, 채소 유통기업도 관심 대상입니다.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이 소고기 탈지방을 사용하는 식당회사 스테이크앤쉐이크를 소유한 비글래리홀딩스(BH)를 지지했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합니다.
한편, 미국 정부의 식이지침이 구조적인 변화를 불러온다면 국제 곡물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빵과 과자의 원재료인 밀 수요는 감소하는 대신 소, 돼지, 닭의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 대두 수요는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선물(3월)은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옥수수 선물(3월)은 견조한 상승흐름을 이어가고 있어 주목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