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반도체 칩 가격이 상승하는 이른바 ‘칩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제조사들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과 PC 등 D램 성능 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경우 원가 상승이 불가피한 만큼 업계 전반에 우려가 팽만한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칩플레이션의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일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랜드의 부품으로 교체하는 등 각기 다른 자구책을 찾는 양상입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삼성 강남에서 시민이 갤럭시Z 트라이폴드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안정훈 기자)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3월 출시 예정인 보급형 스마트폰 갤럭시A57에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차이나스타(CSOT)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OLED 패널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미 지난해 삼성전자에 공급하기 위해 약 40만장의 패널을 생산한 차이나스타는, 올해부터 해당 물량 생산을 점진적으로 늘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OLED 공급망 다변화는 칩플레이션에 따른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술력은 빠르게 개선됐지만 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이 좋은 중국산 패널을 활용해 비용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플래그십 제품보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보급형 모델의 특성을 감안해, 원가 관리에 방점을 찍은 행보라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인한 원가 상승 국면에서 기업들의 대응 전략도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실제로 레노버와 델, 에이수스 등 PC 제조사들도 제품 단가를 올리거나 메모리 탑재량을 줄이는 등의 방안으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국내 제조사도 일부 플래그십 제품의 단가를 인상했지만, 대신 제품 성능 강화를 통해 고객 부담을 완화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인텔의 신형 중앙처리장치(CPU)인 ‘코어 울트라 시리즈’를 적용하는 등, 세부 사항에서 성능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1470원을 웃돈 데다 D램은 물론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핵심 부품의 단가 상승이 겹친 상황에서, 스펙 강화를 통해 소비자 수요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입니다.
2026년형 LG 그램. (사진=LG전자)
원가 부담을 상쇄할 뚜렷한 대응 방안이 부족한 일부 기업들은 출하량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가 스마트폰 비중이 높은 중국 모바일 제조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례로 오포(OPPO)는 올해 예상 출하량을 최대 20%까지 줄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원가 상승과 출하량 감축을 이유로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2.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다만 원가 상승의 근본 원인이 메모리 공급 부족에 있는 만큼 대응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범용 D램보다 AI 가속기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서, 스마트폰과 PC 등 기존 완제품 제조사들은 만성적인 메모리 수급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실제로 매니쉬 바티아 마이크론 수석부사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AI 가속기 제작에 필요한 HBM이 업계 전반의 가용 생산능력을 너무 많이 흡수하는 상황”이라며 “스마트폰이나 PC 등 기존 산업군에 공급할 메모리가 심각한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업계는 당분간 원가 부담을 해소할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만큼,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을 통해 수요 대응에 나설 방침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제품에 집중했다면, 근래에는 구형 제품과 신제품을 복합적으로 제시해 고객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있다”며 “사양과 가격 등 제품별로 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형태”라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