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서명'을 최초로 건의했다는 사실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혐의 1심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한 전 총리가 박 전 장관 등의 건의를 받아 국무위원들의 서명을 시도한 행위가 1심에서 중대한 '내란중요임무종사'로 인정된 만큼, 박 전 장관 역시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걸로 전망됩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3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한 전 총리의 1심 판결문에 비상계엄 당시 박 전 장관의 구체적 역할을 적시했습니다. 재판부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들로부터 서명을 받자고 최초로 제안한 인물은 바로 박 전 장관이라는 겁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4년 12월3일 밤 10시18분쯤, 당시 대통령 신분이었던 윤석열씨는 '2분 국무회의'를 마치고 계엄 선포를 위해 회의실을 나갔습니다. 그러자 박성재 장관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내더니 국무회의에 온 참석자 명단을 적었습니다. 이어 10시30분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참석자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국무회의에 온 참석자들 서명을 받으라"라고 지시했습니다. 박 장관은 10여분 뒤인 10시42분쯤 강 실장에게 "서명받는 것은 준비됐느냐"라면서 준비 상황을 중간 점검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국무위원들 서명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이 "서명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한 총리가 "여기 모여서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서명을 지시했다는 겁니다. 이후 대접견실에 남은 한 총리와 박 장관, 이 장관 등은 비상계엄 선포 후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문제와 행정부 각 부처의 권한 관계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국무위원들로부터 부서를 받아 절차적 요건을 갖추도록 시도했다"며 내란중요임무종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통상적인 국무회의의 경우에는 참석한 국무위원을 전자 방식으로 확인해 국무회의록에 기재하고, 국무위원이 수기로 서명하는 절차는 마련돼 있지 않다"며 "결국 박성재와 이상민의 논의에 따라 한덕수가 국무위원들에게 지시한 '서명'은 국무회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의미의 서명이 아니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해 절차상 요구되는 국무위원 부서(副署)를 의미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맥락에서 박 전 장관에게도 중형이 선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이후 국무위원 서명을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 △법무부를 통해 검찰엔 검사를 파견을, 교정본부엔 구치소 수용 여력 파악을 지시한 혐의 △법무부로 하여금 비상계엄 정당성을 부여할 논리를 만들도록 지시한 혐의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수사 상황을 별도로 보고받는 등 부정청탁에 응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 됐습니다.
앞서 내란특검이 청구한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된 탓에 그에 대해선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5일 박 전 장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 첫 구속영장을, 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1월14일 두 번째 영장을 재차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 전 총리 1심 판결문을 통해 박 전 장관이 '위법성을 인식했다'는 부분이 드러난 만큼 향후 재판에선 분위기가 반전될 걸로 보입니다. 이상민 전 장관의 경우도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한 전 총리 1심 판결문에선 그 행적이 밝혀졌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2024년 12월3일 밤 9시13분 휴대전화로 '헌법'을 검색하고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갑니다. 6분 뒤인 9시19분엔 '정부조직법'을 검색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헌법과 법령 규정을 사실관계와 비춰보면, 이상민은 휴대전화로 헌법을 검색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특별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찾아 윤석열에게 보고했고, 다시 휴대전화로 정부조직법을 검색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에게 단전·단수 등을 지시할 법률적 근거가 있는지 찾아봤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박 전 장관의 재판은 한 전 총리 사건을 심리한 형사합의33부가 그대로 담당합니다. 재판부는 신속한 심리를 위해 주 2회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첫 공판기일은 오는 26일 열립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