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이재희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과다하다며 현실성 있는 경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요 시중은행들에 부과된 총 과징금 규모는 2조원에 달하는데요. 부당이득 환수 목적이 아닌 징벌적 성격이 강할 경우 외국계 은행의 철수 등 금융권에 미치는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외국계' SC제일은행 치명타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오는 29일 홍콩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2차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최종 제재 수위와 과징금 규모가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앞서 금감원은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2조원 규모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습니다. 은행별로 국민은행 1조원대, 신한·하나은행 각각 3000억원대, 농협은행 2000억원대, SC제일은행 1000억원대로 추산됩니다.
이 가운데 불완전판매 규모가 아닌 판매액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한 점이 논란의 핵심입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명시된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 과징금 부과' 규정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수입의 범위를 판매 수수료가 아닌 판매액 전체로 적용하면서 과징금 산정 기준이 과도하게 징벌적이라는 의견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융당국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서도 금융위원회에 금감원에 과징금 산정 결정을 맡겨둬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무위 소속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 관계자는 "금감원 제재 취지는 공감하지만, 산정 방식이 과도해 시장에 미칠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금융사 설립 및 폐업 등을 인가하는 금융위에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필요하다고 전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달 열리는 정무위 전체회의 등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을 지적할 예정입니다.
특히 SC제일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954억원인데, 금감원이 사전 통보한 과징금은 이를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홍콩ELS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자율배상을 진행한 SC제일은행 입장에서는 과징금까지 더해질 경우 최대 반기 실적 수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셈입니다.
물론 현재 은행들이 금감원으로부터 통보받은 과징금은 아직 사전 통보 단계로, 최종 확정까지 여러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은행들의 자율배상 이행 여부와 내부통제 개선 노력 등이 반영될 경우 과징금이 감경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금소법 감독규정에 따르면 소비자 피해 예방과 금소법상 기준 충실 이행, 판매사 자체 배상·수습 등 금융사 노력이 인정되면 최대 50%까지 과징금이 감경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찬진 금감원장은 홍콩ELS 제재에 대해 "소비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감독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분"이라며 강경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
금감원은 오는 29일 홍콩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한 2차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뉴시스)
씨티은행 철수 전례 밟을라
금융권 노동조합에서도 홍콩ELS 과징금이 과도한 제재라는 의견을 국회와 청와대에 제출한 상태입니다. 불완전판매 관련 자율배상을 통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한 은행들에게 또다시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담을 덧씌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같은 과징금 산정 방식은 외국계 은행의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을 높여 금융 노동자 고용 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판매액 전체를 삼으면서 금융노조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걸로 알고 있다"며 "국내 은행의 실적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SC제일은행의 경우 분기 실적이 통째로 과징금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미 글로벌 은행인 씨티은행이 한국 소매시장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국내에 사실상 하나 남은 외국계 은행마저 흔들릴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씨티은행은 지난 2021년 한국 소매금융 단계적 철수를 공식화한 뒤 2023년 개인금융 부문 영업을 사실상 종료했습니다. 글로벌 전략 재편과 수익성 저하가 직접적인 이유로 제시됐지만 국내 규제 환경과 높은 비용 구조, 제한적인 성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입니다.
씨티은행 철수 이후 국내 소매금융 시장은 사실상 국내 은행 중심으로 재편됐습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외국계 은행 특유의 리스크 관리 기법, 상품 구조 설계, 경쟁 촉진 기능은 눈에 띄게 약화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특히 고액 자산가, 글로벌 기업 임직원, 해외 거래 비중이 큰 고객층을 중심으로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외국계 자본의 존재 자체가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성과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합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 개별 제재를 넘어 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본시장법이나 금소법 취지는 소비자 보호와 위반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도 "과징금 산정 결정 과정에서 '수입'에 대한 해석을 판매액 전체에 적용하는 것은 부당이득 환수 목적을 넘어 과잉 금지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 교수는 "이미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에서 철수하며 규제 리스크를 이유로 꼽은 가운데 이번 제재가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본사의 시장 탈퇴 결정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고위험 상품 유통 감소, 외화 자본 유입 둔화, 시장 유동성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024년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시중은행 등 홍콩ELS 손실 관련 고발 기자회견에서 투기자본감시센터와 홍콩지수 ELS 피해자 모임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