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고성장 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 청년들은 우리가 겪지 못한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청년들의 제안이 정책으로 입안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문장은 단순한 입장 표명을 넘어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향후 정책 기조를 압축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행간에는 경제·경기 현황, 일자리 구조, 재정 운용의 방향성, 그리고 시장을 향한 정부의 시그널이 함축돼 있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구가하던 부모 세대의 '황금기'와 작별하고 1~2%대 저성장의 늪에 발이 묶인 한계적 환경에 처해 있다. 청년 문제를 '청년의 시각'에서 진단하겠다는 부총리의 의지를 풀이해보면 정책적 진정성을 엿볼 순 있지만 취업 지연과 고용의 질 악화, 주거비용 상승 및 스펙 경쟁의 심화라는 복합적 중압감을 단칼에 풀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2026 해운선사 해기사 취업박람회'가 열린 지난 10일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 5층 이벤트홀에서 해양대, 해사고, 오션폴리텍 졸업생 등이 해운선사의 현장면접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청년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닌 구조적 환경 변화의 산물로 통찰하려는 관점은 고무적이다. 정책 접근의 출발점을 '구조 인식'에 두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청년을 정책 수혜 대상이 아닌 정책 참여 주체로 포함시키겠다는 시도인 만큼, 정책 설계 과정의 당사자 참여 확대가 정책 운영의 중요 흐름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참여'가 곧 '해결'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목소리를 듣는 것과 그 목소리를 행정·예산·법률의 언어로 공감하고 집행하는 사이에는 거대한 제도적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는 재경부만으로 해결하긴 어려운 난제다. 일자리 정책은 산업·노동 정책과 국토·금융 등 주거 정책, 교육 정책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청년 자문단이 실질적 정책 결정권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는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자문단 제안이 행정·예산·법률 규정으로 이어지려면 부처 간 조정과 정치적 합의가 그만큼 필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부총리의 메시지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청년 시선'이라는 접근법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정부 전체의 정책 조율 체계와 입법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더욱이 재정 운용면에선 정교함이 더욱 요구된다. 성장 여력이 충분했던 시기에는 재정 투입이 비교적 빠르게 성과로 연결될 수 있었지만 현 1~2%대 저성장 환경에서는 정책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처럼 물량 공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청년 지원 정책은 단기성 지원과 구조 개혁적 접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 청년에게 면접 정장을 대여하는 '청나래'사업이 시작된 지난 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한 대여 업체에서 직원이 면접용 정장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2030 세대 중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7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취업 준비 기간의 연장이 아닌 노동시장으로부터의 '구조적 이탈'을 의미하고 있다. 전체 고용률 지표는 반도체 등 특정 산업의 착시 효과로 '양호한 흐름'을 표명하나 정작 청년들이 체감하는 고용 현장은 사계절 내내 영하권이다.
과거 세대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의 연결고리로 사회 진입이 이뤄졌지만 현 시대는 취업 준비라는 완충지대 없이 곧바로 '쉬었음'으로 진입하는 등 '내재적 고립' 단계에 처해 있다.
최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KRIVET)의 분석을 보면, 일하지 않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NEET(니트)' 집단 내에서 '쉬었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 초반이 90%를 상회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단절을 방증하고 있다.
특히 부총리가 언급한 '부모 세대가 겪지 못한 문제'의 핵심 중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은 '상흔 효과(Scarring Effect)'다. 2020년 팬데믹 시기 당시 노동시장 진입을 시도했던 1990년대 후반생들은 연령이 높아진 현재까지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흔 효과는 경기 침체기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가 장기간 낮은 임금, 불안정 고용, 경력 단절 등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이들은 29세에 도달했어도 '쉬었음' 비중을 높이 유지하고 있는 고착화 현상을 띠고 있다. 한 번 고립된 낙인은 장기 미취업으로 이어지고 기업 채용 기피라는 벽에 놓인 세대다. 청년들이 노동 소득을 통한 미래 설계를 포기하고 자산 시장의 환상에 매달리는 것은 이 상흔을 치유할 수 없는 절망을 마주한 산물인 셈이다.
지난해 10월28일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에서 열린 2025 인천 중장년·여성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뿐만 아니다. 청년의 '상흔'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력 산업인 건설업이 성장률을 1.4%포인트 잠식하며 무너지는 사이 그 현장을 지키던 50대 가장들의 일자리도 함께 쓸려 내려갔다. 50대 가장의 소득 붕괴는 청년의 독립을 가로막는 경제적 족쇄가 돼 '쉬었음'의 만성화를 부채질한다.
부총리가 마주한 난제는 청년이라는 특정 세대의 문제를 넘어 무너진 내수 경제의 펀더멘탈 위에서 신음하는 '가계 공동체 전체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현실은 냉엄하게 진단해야한다. 수출의 28%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고용 기여도는 고작 0.4%에 불과하다. 극심한 'K자형 양극화'는 고용 없는 성장을 고착화하며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을 위협하고 있다.
부총리의 SNS 메시지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2만4000명의 인턴이라는 숫자를 넘어 개개인의 이행 경로를 복원하는 '밀착형 지원 체계'가 작동돼야 한다. 화려한 지표 뒤에 가려진 '세대적 상흔'을 직시하고 초당적 협력을 통해 구조적 장벽을 허무는 정책의 대전환을 보여줘야 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총리-재정경제금융관 혁신사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