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수도권 생활폐기물이 충북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수도권 쓰레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수도권 공공소각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입장이나 '시설 증설'이 누적된 주민 불신과 행정 피로를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만 커집니다.
국내 소각시설의 설치와 운영을 규율하는 법률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법 부재의 문제보단 '절차의 단절'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폐기물 행정(계획·입지·승인), 환경 관리(평가·허가), 주민 지원(주변 지역 지원) 등이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문서 체계에 따라 작동하면서 갈등을 하나의 숙의 절차로 통합·관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7곳 증설 '속도전'…갈등 키우는 꼴
19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수도권 쓰레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집단이기주의(NIMBY)가 아닌 절차적 정당성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문제로 진단했습니다. 현재 인천 강화군은 충북 청주까지 생활폐기물 3200톤을 보내는 계약(10억6000만원)을 체결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북 청주까지 쓰레기를 보내는 '원정 소각' 문제가 지역 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입니다.
지난 1월26일 서울 강남구 강남환경자원센터에서 근무자들이 재활용품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서울시·인천시·경기도는 지난 1월1일부터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조처를 시행 중입니다. 소각·재활용 후 나온 잔재물만 매립하도록 하면서 '원정 소각'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지방은 2030년부터 직매립 금지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2일 공공소각시설 설치 기간을 기존 140개월에서 98개월로 약 3.5년 단축하는 대책을 발표하는 등 수도권 소각장 27곳 '속도전'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소각장 시설 확충과 시간 단축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내 소각시설 갈등은 단순히 주민의 집단이기주의 결과가 아닌 현행 법제가 숙의를 '사업의 부속 절차'로만 취급하며 발생한 구조적 신뢰 결핍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12월15일 서울시청 앞에서 수도권 생활폐기물이 충북 민간 시설로 넘어가는 것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숙의 공백 지적…"누가 책임지는가"
현행 법제는 소각시설 설치와 운영을 여러 법률로 규율하고 있지만 절차 간 단절이 심각하다고 봤습니다.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폐기물 행정(계획·입지·승인), 환경 관리(환경영향평가·허가), 주민 지원(주변 지역 지원제도) 등이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문서 체계에 따라 작동하면서 하나의 숙의 절차 체인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며 구조적 빈틈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초기 단계의 '숙의 공백'이 꼽힙니다. 후보지 선정 이전에 폐기물 감량이나 타 지역 협력 등 정책적 대안을 논의해야 하지만 현행 제도는 곧 '입지 선정'이라는 결론으로 직행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갈등 책임'이 사업 시행자에게 집중되는 점도 지목했습니다. 각 법령에 따른 판단 근거를 종합한 '통합 결정 이유서'가 없어 주민들은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가"를 묻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운영 단계의 '갈등 재점화'도 문제입니다. 주민들은 설치 이후에도 상시 검증과 조건 변경을 원하지만 사후관리 장치가 사회적 협의 구조와 결합되지 않아 작은 문제에도 갈등이 폭발적으로 재연되기 때문입니다.
'사후 감시와 재평가권'의 법적 결합도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착공 전 일회성 보상 중심의 합의에 그치면서 주민들은 장기적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문제입니다.
이에 반해 유럽연합(EU)·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보면, 갈등의 사후 수습보다는 기획 초기의 '조기 사회적 합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U의 경우 1998년 채택된 오르후스 협약을 기반으로 '환경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는 초기 단계에서 시민을 참여시키고 전문가가 아닌 주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전문가용 요약본'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라는 독립 기구를 운용하는 프랑스는 행정으로부터 독립해 정보 제공이 충실한지, 참여 기회가 형평성 있게 보장되는지를 감시하는 '절차 보증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김경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19일 국내 수도권 쓰레기 문제와 관련해 "일본 요코하마는 시설의 안전성 설득이 아니라 '시설의 필요 규모' 자체를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전략적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전략적 전환"
독일은 철도 프로젝트 갈등을 계기로 행정절차법을 개정, 공식 인허가 전 '조기 시민 참여'를 명문화한 사례입니다. 독립적 조정관(Mediator)이 주민과 사업자 사이에서 대화를 촉진하며 신뢰를 쌓는 식입니다.
일본 요코하마시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요코하마는 시설의 안전성을 설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의 필요 규모' 자체를 시민과 함께 결정하는 전략적 전환을 시도합니다. 시민과의 협의를 통해 쓰레기 감량 목표를 세우고 소각 시설의 규모는 줄이는 등 주민들의 동의를 끌어내고 있는 겁니다.
김경민 조사관은 "단순한 의견 수렴 강화를 넘어 대안 비교-독립적 절차 보증-응답 책임(기록·추적)-통합 결정 이유서-허가 조건 연동-운영 데이터 공개·재평가를 하나의 '공론화 목적 정합형 연계입법' 방안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어 "소각시설 계획 수립 시 폐기물 감량, 재활용률 제고, 타 지역 협력 등 정책적 대안을 비교·검토하는 '전략환경평가' 단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독립적 절차 보증 기구 도입과 통합 결정 이유서 의무화, 운영 데이터 공개·재평가 제도화를 제안했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