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째 포성이 잦아들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얼어붙은 전선' 반대편에는 설상가상으로 중동 사태가 터졌다. 러·우 종전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번번이 안보와 영토라는 평행선에 부딪혀 굴절되는 사이 '타오르는 전선'의 화약고가 터진 셈이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까지 더해지면서 공급망의 동맥경화와 원자재 가격의 상시적 불안은 이미 경제의 기저를 흔드는 만성적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얼마나 빨리 달릴 것인가라는 '성장의 속도'가 아닌 겹겹이 쌓인 '불확실성의 하중'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다는 얘기다.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러·우 전쟁은 재정·산업 구조를 전시 체제로 재편하는 등 장기 소모전을 감내하고 있다. 설령 휴전이 이뤄진다 해도 영토 분쟁과 전후 재건, 안보 질서를 둘러싼 갈등은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는 화약고다. 이는 단기 충격의 범주를 넘어 세계 경제가 상시 안고 가야 할 상수다.
중동 사태는 치명적이다. 에너지 수송의 핵심 경로가 위협받는 순간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시장의 가격은 이제 단순한 수급의 함수가 아니라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얹힌 '정치적 가격'으로 변모했다.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5분의 1 지나는 해상 물류의 급소 즉, '초크 포인트' 호르무즈 해협의 비명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직격탄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분석을 보면,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기존 전망보다 20달러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올해 한국 성장률은 0.45%포인트 추락한다. 물가도 0.6%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조합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지속성이다. 일시적 급등은 정부 대응과 시장이 흡수할 수 있지만 높은 평균가격의 고착은 무역수지·환율·내수에 연쇄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면 수입단가 상승에만 그치지 않는다. 거래비용 충격이 가중될 수 있다. 무역수지가 흔들리고 환율이 압박받을 경우 물가와 금리 경로 역시 다시 조정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장중 낙폭 만회 등 시장의 초기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경로는 더 민감하게 읽고 있다.
경상수지 우려와 관련해서는 AI에 따른 반도체 수요가 견조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도체 값'과 '에너지 값' 사이 균형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불확실성은 전장 밖도 불안 요인이다. 미·중 갈등 등 유가라는 충격에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공급망 차질, 그리고 거래 비용의 상승 우려까지 겹친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대응의 초점은 단기 가격 안정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축 확대, 공급선 다변화, 기술 투자, 전략 광물 외교 강화 등 병행적 대비가 요구된다. 가령 성장률 수치가 높아진다 해도 공급망 충격과 지정학적 갈등이 반복된다면 체감 안정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껏 리스크라는 거친 바람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였다. 그러나 돛의 방향을 조정하고 선체를 보강하는 것은 우리 의지에 달렸다. 흔들림 속에서도 '견디는 힘', 2026년 한국 경제가 증명해야 할 '진짜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