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한 달째 이어진 '중동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2차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추가 인하를 가동했지만 이를 초과하는 가격인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원유뿐만 아닌 천연가스(LNG)까지 동시 충격을 받고 있어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의 '에너지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나흘째인 30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99원으로 표기돼 있다. (사진=뉴시스)
무너지는 '심리적 저지선'
30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27.59원, 경유는 1902.92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2월27일 전쟁 발발 직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635.4원이었으나 개전 10일 만인 지난 10일 1745.8원으로 올라선 바 있습니다.
이어 지난 20일에는 1812.5원을 기록하는 등 심리적 마지노선인 1800원선을 넘어섰으며 이날 서울 지역 1920원대를 넘는 등 2000원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 달 만에 리터당 약 300원 가까이 급등한 셈입니다.
정부는 지난 27일 2차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지만 첫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하루 만에 10.8원 급등한 1830.2원으로 올랐습니다. 서울의 경우 하루 사이 15.0원이 뛰었습니다.
정부가 상한선을 210원 올리자, 재고 물량임에도 일제히 가격을 올리는 '편승 인상' 현상을 보인 겁니다. 시행 나흘째인 30일에는 서울 휘발유 평균이 1927.6원까지 치솟는 등 1차 시행기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폭을 나타냈습니다.
1차 최고가격제 당시에는 상한선(1796원) 설정으로 단기적인 안정 효과가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가격이 고점 대비 100원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졌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즉, 1차 시행 당시 일일 하락 폭이 5원 안팎이었다면 2차 시행 이후에는 일일 상승폭이 10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1차 시행이 급등하던 유가를 진정시키는 신호였다면 2차 시행은 이미 오른 원가를 반영하는 계기가 되면서 국제유가와의 동조화가 강화됐다"며 "상승폭이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커진 만큼 2000원 돌파는 시간문제"라고 말했습니다.
2차 최고가격제 시행 나흘째인 30일 서울 휘발유 평균이 1927.6원까지 치솟는 등 1차 시행기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폭을 나타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하루 만에 휘발유 214원 '껑충'
정부도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를 불시 점검한 서울소재 A 자영주소 사례를 꺼내 들었습니다. 지난 26일 대비 하루 만에 휘발유, 경유가 각각 214원, 216원 인상됐다는 설명입니다.
김 장관은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현장의 어려움이 큰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통해 가격 상승폭을 억제하고 있음에도 이를 초과하는 급격한 가격인상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시장 신뢰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부는 2차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급격한 가격인상이 나타난 주유소를 대상으로 범부처 합동점검에 착수했습니다. 국제유가 및 정유사 공급가격 대비 인상 수준의 적정성, 재고 및 수급 상황, 유통 거래, 보조금 부정 수급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하고 위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행정처분을 내릴 방침입니다.
그럼에도 가격상승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은 높습니다. 미국 해병대 투입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 전쟁 종결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요구 조건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분석이 많고, 광범위한 해안선을 고려할 때 호르무즈 해협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지상 작전을 포함한 장기적 개입이 불가피해지면서 이란 전쟁의 장기화 국면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후티 반군의 참전까지 공식화하면서 국제유가는 급등세입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쟁이 6월까지 이어질 경우 두바이유가 최고 179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리터당 2000원 위로 더 끌어올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2차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나흘째인 30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99원으로 표기돼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경제 부담…추경 시급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9일 한 방송에 출연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선에 도달할 경우 차량 5부제 민간 의무화 등 '3단계(경계)' 조치 검토를 시사했습니다. 유류세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에너지 충격이 휘발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LNG 시설 피격 여파로 LNG 가격이 20달러로 두 배 뛰었습니다. 연료 일부를 LNG 시설로 바꾸고 있는 제조업체들로서는 '이중 쇼크'에 놓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추진되더라도 실제 현장에 자금이 투입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사이 고유가 충격이 소비와 생산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 경제에 부담을 더할 가능성이 큽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석유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가격 안정과 소비자 부담을 완화할 수 있지만 생계형 수요를 넘어선 가격 보전은 재정 낭비를 초래하고 기후위기 대응에도 역행한다"며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가 부담에 더 크게 노출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역 경제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시내의 한 에쓰오일 주유소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