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흔히 한국의 산업구조를 ‘9988’이라 부른다. 99%의 중소기업이 노동자의 88%를 고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칫 ‘1%밖에 안 되는 대기업이 고용의 12%나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에서 250인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13%였다. 이는 국가부도 사태에 몰렸던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미국과 영국에서는 250인 이상 기업의 고용비중이 각각 56%, 47%나 됐다. 우리나라보다 고용률이 낮은 프랑스도 OECD 평균치인 31%를 크게 웃돌았다.
이 통계의 시사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다른 나라의 대기업들보다 일할 사람을 덜 필요로 하거나, 자신들의 고용 책임을 중소기업에 떠넘기거나다. 고용노동분야 전문가들은 대체로 후자에 무게를 둔다. 실제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에 적을 둔 ‘소속 외 노동자’라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간접고용이다. 대기업이 용역도급의 형태로 하도급업체에 생산라인 등을 떼어주면 하도급업체는 그 라인에서 일할 사람을 뽑고 인사·노무를 관리한다. 이때 하도급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는 원청업체의 시설에서 원청업체가 정한 일을 하지만 소속은 하도급업체인 중소기업이 된다. 이를 통해 원청대기업은 직·간접 노무비와 사회보험료, 임금 등을 아낄 수 있다. 또 도급계약 해지, 하수급업체 교체 등의 방식으로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갈아치울 수 있다. 특히 간접고용은 파견법상 파견 사용과 달라 업종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간접고용의 가장 큰 문제는 제도적으로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은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형태공시제’뿐이다. 노동계에서 정부 추산보다 2배나 많은 200만명이라는 수치를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노동계의 주장이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경영계가 고용형태공시제 공시범위에서 소속 외 노동자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도 이어질지 불분명하다.
더욱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고용형태를 따지면 상당수가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이지만 하도급업체의 도급계약이 종료되면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 대상자가 된다. 또 기간제·파견법의 적용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원청업체에서 일한 기간이 2년이 넘어도 원청업체 직원으로는 고용될 수 없다. 고용노동부도 간접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나, 간접고용 총량을 관리하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물론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처럼 ‘민사상 계약행위를 노동법으로 제한할 수 없다’며 손 놓을 일도 아니다. 사내하도급 요건을 법률로 정하든, 허용 업종을 제한하든 관리라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현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대책을 찾겠다는 것은 간접고용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인정하고 독려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김지영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