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우리 회사 넘보지 마"

NXP 인수가 50억달러 상향 결정
브로드컴 적대적 M&A 방어 목적

입력 : 2018-02-21 오후 5:54:54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퀄컴이 브로드컴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저지에 적극 나섰다.
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이 인수를 추진 중인 네덜란드 자동차반도체 전문기업 NXP 인수가격을 당초보다 50억달러 상향조정키로 결정했다. 이는 퀄컴이 자동차반도체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해 주주들의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브로드컴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퀄컴은 다음달 6일(현지시간) 주주총회에서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반도체업계는 올해 최대 '빅딜'로 꼽히는 브로드컴·퀄컴의 M&A에 따른 득실 계산에 나서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퀄컴은 NXP 인수가격을 2016년 10월 제안한 주당 110달러에서 127.5달러로 인상하기로 헤지펀드 엘리엇, 소로반 캐피털 등 9곳의 주주들과 합의했다. 이에따라 총 인수가격은 약 380억달러에서 440억달러로 16%가량 높아졌다. 이는 주요 주주들이 퀄컴의 인수 제안가가 너무 낮다고 주장하며 압박해 온 데 따른 것이다. 
 
퀄컴이 NXP 주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싱가포르 기반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의 적대적 M&A 시도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퀄컴은 지난해 11월 브로드컴의 주당 70달러 인수 제안을 거절한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주당 82달러로 인상한 인수 제안도 거절했다. 그러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퀄컴이 인수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적대적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도 지난 16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퀄컴이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ISS는 퀄컴이 NXP 인수를 마무리하면 더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NXP 인수 거래가 완료되면 퀄컴이 브로드컴 인수 제안을 거부하거나 브로드컴에 더 높은 인수가를 제안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음달 예정된 퀄컴 주주총회를 앞두고 브로드컴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퀄컴 측이 NXP 인수 종결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퀄컴 건물 외관. 사진/뉴시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해 최대의 '빅딜'로 꼽히는 브로드컴·퀄컴의 M&A가 막바지에 다다름에 따라 득실 계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양사 모두 와이파이, 블루투스, 스마트폰 칩 등의 분야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칩 기술을,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주력사업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브로드컴과 퀄컴은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용 반도체의 최대 공급업체들로,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약 60%에 이른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서 존재감도 크다. 그만큼 이번 M&A가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반도체시장에서도 시스템반도체 사업만 놓고 보면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퀄컴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고객사다. 하지만 퀄컴이 브로드컴의 자회사가 될 경우 파운드리를 대만 파운드리 기업인 TSMC에 위탁생산 물량을 일임할 가능성이 높다. 브로드컴이 TSMC에서 칩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업 분야에서도 간접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모바일 프로세서,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스마트폰의 필수 부품들을 퀄컴·브로드컴이 독점하게 되면 삼성전자, LG전자가 스마트폰 생산 과정에서 구매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나아가 퀄컴과 NXP가 모두 브로드컴에 한 번에 넘어갈 경우 거대한 특허괴물일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브로드컴, 퀄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합칠 경우 반도체 분야에서는 가장 넓은 지적재산권 기업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같은 우려 때문에 인수합병과 관련해 각국 당국의 규제 심사가 엄격하게 적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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