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축구와 인생은 닮아…내가 한 걸음 더 뛰어야 이겨"

16년 동안 축구공과 살아온 삶 책으로 펴내…"경기장의 가치를 생활 속으로 가져와야"
"공감하고 희생해야 이기는 스포츠…축구에 제대로 빠져들면 남 등치는 행동 못해"

입력 : 2018-09-2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완승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다시 국내 축구 붐이 일기 시작했다. 국민은 민족주의와 직결되는 축구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했다. 지금보다 열기가 더 뜨거웠던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법무법인 세아의 정기동 변호사도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적 축제를 즐기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16년이 흐른 지난 6월 축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당신은 혼자 걷지 않으리-공 좀 차는 변호사의 축구 이야기'를 출간했다. 이제는 대표팀 경기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내 프로팀'이 있고 주말마다 축구화 끈을 동여매고 운동장을 누비는 정 변호사는 단순한 마니아 수준을 넘어 축구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변에 설파할 만큼 축구 자체를 깊이 탐구한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4일 그를 만나 축구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책을 쓴 이유 등에 대해 들었다(편집자주). 
정기동 변호사가 지난 17일 법무법인 세아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기동 변호사
 
왜 축구에 관한 책을 썼나. 
 
2010년부터 축구모임 인터넷 게시판 등에 축구에 대한 잡문들을 썼다. 프로 경기를 보고 느낌을 받거나 동네 축구에 공을 차러 가서 느낄 때도 있었고 늘 생각했던 것을 정리할 때도 있었다.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글로 적어 정리했다. 몇 년이 되니까 축구 모임 회원과 대학 후배 중 출판사를 운영하는 지인이 있는데 제 글을 보고 '책 내자'고 제안했다. 바로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고 고민을 좀 했다. 처음부터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40대 후반에 축구와 사랑에 빠진 변호사, 언뜻 쉽지 않은 조합 같다. 
 
변호사도 음악이든 축구든 취미를 가질 수 있지 않나. 어릴 때 공을 차고 놀았지만, 대학 입학 후 축구와 별 인연이 없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사법연수원을 늦게 들어갔는데 이때도 정기적으로 축구 경기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연수원 수료 직후 일했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대회가 있을 때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2년 이후 '카탈루냐' 관련 글을 읽다가 FC 바르셀로나를 알았다. FC 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역사 배경 등을 알게 됐는데 너무 재밌었다. 스페인 사회 내부나 지역 특성 관련 글을 더 많이 읽었고 스페인 지역 간 특성·대립된 문화를 알게 됐다. 지역마다 축구팀이 있고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 스페인 내전에서 마드리드 중심의 기득권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역사 등 정치·문화적 배경에 대한 글을 읽으니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맞대결을 의미하는 '엘 클라시코'가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다. 축구 관련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룬 책을 읽으며 '아 사람들이 축구를 이렇게 깊이 대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읽으니까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즈음 박지성·이영표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면서 국내에도 유럽축구가 본격적으로 생중계됐다. 당시 응원하는 팀은 없었으나 경기를 봤다. 해외 골닷컴·가디언 등 축구 전문 매체 기사도 매일 봤다. 그렇게 살금살금 축구에 빠져들었다. 2008년 정부법무공단 축구팀을 만들어서 창립 멤버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게 됐다.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있나. 
 
2006년부터 아스널 팬이 됐고 이제 매일 팀 홈페이지를 본다. 이전 감독인 아르센 벵거에게 매료됐다. 이 사람은 원칙적인 현실주의자면서 현실적인 원칙주의자다.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모든 스포츠팬이 마찬가지인데 진짜 팬은 팀 성적에 일희일비해야 한다. '피버 피치'를 쓴 닉 혼비의 말처럼 응원하는 팀이 지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참는 수밖에 없다. 팬이 되고 난 뒤에는 주로 경기가 주말이다. 안 중요한 경기가 없다. 지고 나면 그 여파가 한 사흘 간다. 정신적으로 회복되면 지고 나서 감독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때 가서 찾아본다. 선수는 올해 발렌시아로 이적한 프랑스 출신 미드필더 프란시스 코클랭을 굉장히 좋아했다. 원래 골 넣는 자리가 아니라 수비하는 임무다. 제 포지션도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코클랭처럼 플레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전설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인 파트리크 비에이라·로이 킨과 달리 축구선수로 치면 키도 작고 생김새도 곱상하게 생겼다. 하지만 자기가 한 걸음 더 뛰고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플레이한다. 
 
보통 리오넬 메시·크리스티아누 호날두·손흥민과 같이 골잡이가 인기가 많은데.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이전에는 자기가 빛나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 패스해야 하는 상황인데 안 했다.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때 경기 도중 교체되자 발로 잔디를 차는 걸 직접 봤는데 그러면 안 된다. 교체한 감독은 뭐고 교체로 들어간 선수는 뭐가 되나. 대표팀 주장을 맡은 뒤 플레이가 달라진 거 같다. 골을 못 넣어도 수비 가담도 열심히 하는데 그래야 팀에서 리더가 되고 동료 선수들의 존중을 받는다. 저는 자기가 빛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는 별로 안 좋아한다. 메수트 외질(아스널)은 수비 가담을 더 해야 하는데 플레이가 안 풀리면 짜증 난 게 눈에 보인다. 울상을 짓는데 멘탈이 아주 강한 거 같지 않다. 제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호날두는 심하게 얘기하면 열심히 뛰지만, 팀이 이기는 거보다 자기 골 넣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듯하다.  
 
A매치에 비해 국내 프로축구에 대한 인기는 저조한 편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에서 축구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국가 대표팀이다. 축구 국가 대표팀은 국내 스포츠 중 가장 팬이 많다. 이번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으로 축구 인기가 많이 늘었다. 요즘 기사를 보니 국가 대표 인기 열풍을 프로축구인 K리그로 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제가 보기엔 전례에 비춰 안 이어진다. 국가 대표는 애국심으로 소비되는 것이고 K리그는 취미생활이라 효용이 다르다. 예를 들어 영화가 취미라면 어떤 한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고 어떤 스타일인지 추적하게 되는데 프로야구는 어느 정도 입지를 갖췄다. 팬과 팀 관계도 단단하게 돼 있다. K리그는 많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 소관이 아니기에 답은 없다. 그 방면 종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정 변호사가 지난 2016년 4월 아마추어 축구클럽인 이우FC 소속으로 경기를 뛰고 있다. 사진/정기동 변호사
 
책에서 '중경말축론'과 '축구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축구를 어떻게 생활에 접목하고 있나. 
 
'중경말축론'은 주중에는 밭을 갈고 주말에는 축구를 한다는 뜻이고, '축구 삼위일체론'은 축구를 하고 경기를 보며 책을 읽어야 축구 생활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우선 축구가 제 주말 활동의 최우선 순위다. 저나 제 아내, 형제와 관련된 게 아니면 결혼식도 가지 않는다. 물론 아주 친한 친구 자식이면 가기도 하지만 어지간하면 안 간다. (웃음) 중경말축은 대부분 축구 모임 회원들도 실천하지만, 삼위일체는 굉장히 지키기 어렵다. 제가 현재 몸담은 이우FC에서도 공은 차는데 직접 프로축구장을 찾는 회원들은 저 말고 없다. 제가 표를 구해 같이 가면서 축구장에 처음 가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경기장에 안 가도 텔레비전으로 보면 되는데 응원하는 팀이 있는 사람도 없다. 보통 손흥민이 레버쿠젠에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면 응원하는 팀도 바뀌는데 이러면 축구팬이 아니라 손흥민 팬이다. 축구 기사 정도는 보겠지만 그 이상으로 축구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다. 저는 요즘 축구·중국어·자연과학 관련 책만 보는데 읽으면서 축구가 훨씬 더 좋아졌다. 축구 관련 책도 전술·과학·철학 등 아주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더 좋아하고 깊이 이해하게 되니 축구가 더 재밌어진다. 
 
축구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축구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개인 취미 생활이니까 대단한 게 아니다. 다만 축구가 아니더라도 내 몸을 움직여 땀 흘리면 건강해지는 일이니까 굉장히 중요하다. 축구·영화·음악 여러 취미가 있는데 취미는 자기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그런 취미 생활에 하나로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고 활력을 얻으며 소비됐으면 한다. 축구를 보면 처음 양 팀 22명 선수가 서로 악수한 뒤 직접 몸을 부딪치니까 싸움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프로선수는 싸우지 않고 뒹굴었다가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걸로 끝이다. 축구는 관중과 공감하고 내가 한 걸음 더 뛰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자기가 빛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고 팀에 헌신하는 선수가 있는데 헌신하는 선수가 있어야 팀이 이긴다. 매주 축구를 보지만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볼 때마다 너무 좋다. 경기 자체가 인간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스포츠라고 본다. 이를 열정·역동성·감성이 충만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경기장 안에서의 가치를 내 생활 속으로 가지고 오고 싶다. 서로 공감하면서 점점 헌신적으로 내가 한 걸음 더 뛰는 플레이를 한 뒤 경기가 끝나면 일상생활에서 남 등치는 행동 등을 못 할 거 같다.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축구는 보통 다 젊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도 본격적으로 한 게 40대 후반이고 매주 한 것은 50대 초반에 했으니 축구가 과격한 운동이니까 좀 특이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축구를 취미 생활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살다 보면 이것을 찾을 여유가 없을 때가 있다. 변호사라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저는 축구로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말에 나가서 열심히 뛰고 나면 피폐한 정신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몸과 마음을 바쳐서 직장 생활 외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나도 무언가를 좋아해 봐야겠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뭔가를 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축구팬이 되라는 말은 절대 아니고 생활의 활력을 얻고 나한테 뭐가 맞을까 또 하고 있는 것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하나 있으면 용기를 얻지 않나. 이전에 친구들과 간 1박 2일 모임에서 축구 강의를 했었는데 한 친구가 다 듣고는 '취미생활을 체력 관리 차원에서만 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연구해서 자기 삶의 깊이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좋았다'고 말해줬다. 축구를 좋아하는 제가 가장 바라는 바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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