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 없이 정권교체? 사상 초유의 신구 권력충돌

문 대통령 '조건 없는 회동' 제안에 윤 당선인 측 '냉랭'
청와대 "협상 실무라인 가동 어렵다" 판단…윤 당선인 결정 기다리는 중

입력 : 2022-03-24 오후 6:06:10
지난 2019년 11월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건 없는 회동을 거듭 제안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 측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윤 당선인 측은 이번 갈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인사권 양보를 고수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청와대는 현 상황에서 협상 실무라인 가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윤 당선인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양측의 거듭된 갈등에 회동 없이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답답해서 한 번 더 말씀드린다"며 "저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곧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이다.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 나누고 혹시 참고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무슨 회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을 예방하는데 협상과 조건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마시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국은행 총재와 감사위원의 인사권을 놓고 정권 이양기에 신구 권력 사이 냉기류가 흐르자 조건 없는 회동을 제안하며 거듭 손을 내밀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에도 윤 당선인을 향해 "무슨 조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청와대의 문은 늘 열려있다"면서 빠른 시일 내 허심탄회한 자리를 갖자고 제안한 바 있다. 청와대는 문제가 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인사권은 "현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도 윤 당선인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협의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갈등 사안인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의 경우, 5월9일 문 대통령 임기까지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만 덜어주면 예비비 국무회의 의결 등 최대한 협조의 뜻도 내비쳤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4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당선인과의 회동 관련 발언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시진=뉴시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문 대통령의 이날 회동 제안에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공지를 통해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리는 것처럼 언급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과의 회동 조율이 난항을 겪는 것과 관련해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직접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언급한 것을 협상 채널로 나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등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에 대한 비판으로 본 것이다.
 
김 대변인은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은행 총재, 감사위원 등에 대한 인사와 관련해선 "지금 임명하려는 인사는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아닌, 새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일할 분들"이라며 "당선인의 뜻이 존중되는 것이 상식"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어 "저희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면 인사를 하지 않겠다"며 청와대 언급을 정면으로 되받았다.
 
양측이 전날 한국은행 총재 후보 지명으로 충돌한 데 이어 이날 또 다시 문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부딪히면서 실마리는 점점 사라지는 기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한국은행 총재·감사위원 인사 문제에 더해 이날 인수위 업무보고에 법무부를 배제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무한대로 넓혀졌다. 또 당장 다음주부터 윤 당선인이 지방 방문 등을 계획하면서 문 대통령과의 회동 일정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청와대도 회동 진행을 위한 협상 실무라인을 가동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판단했다.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간 협상을 통한 사전 의제 조율조차 어렵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직접 회동을 거듭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지금 4번째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이라며 "배석자 없이 회동하자고 한 건 당선인이 무슨 말씀을 해도 좋다고 하는 선의와 배려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대통령이 4번이나 손을 내밀고 직접 말씀했고, 대통령이 (당선인)스스로 판단해 달라고 말씀했다"며 "답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선인이 대통령을 찾아뵙고 예방을 하는 회동인데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 되냐"며 "이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대 사례를 봐도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은 대선 이후 최대 10일 내에 이뤄졌다. 이미 두 사람의 회동은 전례와 비교해 상당히 늦어졌다. 양측의 회동은 대선 이후 2주일이 지났지만 일정조차 조율될 조짐이 없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은 첨예한 쟁점을 논의하기보다는 국정 협력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성격이 짙었다.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 교환 또는 당선인의 대통령에 대한 협조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정권교체기인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간 만남에서도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의견 교환만 이뤄졌을 뿐 별다른 합의 사항은 없었다.
 
역사상 첫 정권교체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의 만남은 달랐다. 당시 양측의 회동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 협정 이행 등에 합의하는 등 중요한 결과물이 나왔다. 다만 이마저도 김대중 당선인인 군사독재의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용서 차원에서 사면을 요청했고, 외환위기라는 국난에 직면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회동 외에는 당선인이 인수위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인수위가 어떤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것을 가지고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의 회동이었다"며 "대통령과 당선인의 협상과 사전 조율이 어디 있었나. 또 대통령과 당선인의 의견 조정은 비공식적으로 할 일이지, 회동을 통해 처음부터 협상해서 조율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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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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