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으로 6전6패…험난했던 지역주의 도전, '바보' 허대만 별세

향년 54세로 별세…'보수텃밭' 포항서 민주당 간판 달고 6차례 도전해 모두 낙선
포항의 '지역주의 극복' 상징…석패율제 도입 무산 아쉬움 남아
주변 지인들 "성과 평가 못 받아도 포항시민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기뻐해"

입력 : 2022-08-23 오후 5:58:14
지난 2020년 7월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가운데)이 국회에서 열린 대구광역시당·경상북도당·제주특별자치도당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2008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 17.06% '낙선', 2010년 경북 포항시장 지방선거 18.93% '낙선', 2012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 17.84% '낙선', 2013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8.50% '낙선', 2018년 경북 포항시장 지방선거 42.41% '낙선', 2020년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 34.31% '낙선'.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1995년 26살 최연소로 포항시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당선됐지만 이후 2020년까지 7차례 선거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가 거둔 최종 성적표는 1승 7패. 특히 2008년부터는 '민주당' 간판을 달고 6차례 포항에서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모두 낙선했다. 주위에서는 험지에서의 무모한 도전을 말렸지만 그는 민주당 간판을 내리지 않았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고향에서 지역주의 벽에 도전하다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지난 22일 암 투병생활 끝에 향년 54세로 별세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첫 출발은 괜찮았다. 만 26세 때인 1995년 전국 최연소로 제2대 포항시의회 의원(무소속)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앞길은 탄탄대로로 보였다. 그와 지방분권 운동을 함께 한 노민호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젊은 나이에 포항시의원이 되어서 스펙도 좋고 그래서 정말 잘 나갈 거다,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허 전 위원장은 1998년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경북도의원에 출마하며 36.82%를 득표했지만 2위로 낙선했다. 이후 2008년부터는 민주당 간판을 내걸고 보수의 텃밭인 경북 포항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경북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에만 4차례, 포항시장 선거에 2차례 출마했다. 상대 후보의 면면도 만만치 않았다. 2008년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자 현역 지역구 의원인 이상득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를 만났다. '영포라인'이 활개를 치던 시절 대통령의 친형은 '상왕'으로 불리며 국회를 주름 잡았다.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박명재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를 만나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13년 10월 경북 포항남·울릉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허대만 민주당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그의 무모한 도전은 헛되지 않았다. 처음 민주당 소속 후보로 나선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10%대에 머물렀지만 나중에는 40%대까지 올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 포항시장 선거에선 42.4%의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다만 당시 현역 시장인 이강덕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50.2%를 득표하며 또 다시 낙선해야 했다. 이후 2020년 포항 남·울릉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나섰고, 비록 패배했지만 34.31%를 득표했다. 이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주자로서는 첫 30%대 득표율이었다. 한 고령의 시장 상인은 "내가 죽기 전에 너가 당선되는 걸 봐야 하는데"라며 그의 패배를 아쉬워했다는 얘기도 있다. 
 
허 전 위원장을 잘 아는 주변 지인들도 그의 지역주의 극복 노력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면서도 결실을 이뤄내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경북에서 (민주당 소속으로)6번 출마해서 6번 낙선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며 "26살에 포항시 최연소 시의원도 했다. 지역주의 한계를 돌파하지 못해서 그렇지, 인재다. 주위에 같이 했던 동지들, 자치분권 쪽과 민주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존경받았던 사람인데 안타깝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허 전 위원장처럼 보수 텃밭인 경북 지역 선거에 4차례 도전했던 김현권 전 민주당 의원도 "굉장히 안타깝다"는 심경을 전했다. 김 전 의원은 허 전 위원장에 대해 "지역주의에 맞서서 가장 밑바닥에서 오랜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일관된 믿음을 갖고 도전을 지속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지역이 그렇다 보니 어떤 노력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것이 포항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으로 기뻐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증언처럼 쏟아지는 동네 민원을 어떻게든 중앙과 연결시켜 해결 지었던 사람이 허 전 위원장이었다. 비록 그 공로가 상대당에게 돌아가도 "됐으면 됐지"라며 만족감을 보였다. 
 
지난 2018년 3월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이 경북 포항시 중앙상가 실개천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포항시장 후보로 출마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임미애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허 전 위원장을 "겉으로는 유순한 면이 있지만, 속은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사람이 참 착했다. 이렇게 험한 데에서 버틸 수 있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경북에서 민주당 정신으로 살아남으려면 속에는 정말 강한 심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임 위원장은 또 허 전 위원장에 대해 "포항을 사랑하는 진짜 포항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저도 의성에서 정치를 하지만 선거에서 계속 떨어지면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 저는 서운한다는 이야기를 (지역 주민들에게)하는데 이 분은 제 앞이나 제 남편(김현권 전 의원) 앞에서 단 한 번도 포항시민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친 적이 없다. 그게 되게 놀라웠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오징어가 안 팔려서 수협 창고에 오징어가 굉장히 많이 쌓여 있었다. 그때 (허 전 위원장은)그것을 팔기 위해서 여러 곳에 연락하고, 서울에 찾아가고 당에 연락하고 그랬다"며 "농담 삼아 '당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음번 선거에 포항 사람들이 찍어주나, 절대 안 찍어준다'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허대만이 한 말이 '표 생각해서 이러고 다니는 것 아니다'는 것이다. 제가 기억하는 허대만은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말로 포항을 사랑하는 진짜 포항 사람이었다. 그래서 되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지난 2020년 4월 이낙연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이 경북 포항시청 앞에서 경북 포항북구 오중기 후보, 포항남구울릉군 허대만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역주의에 맞서 민주당 후보로 수차례 포항 선거에 도전한 허 전 위원장에게 당에서 지역 분배 차원에서라도 비례대표 공천장 한 번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노민호 대표는 "당에서 저 정도 되는 사람에게 비례대표를 못 주나, 저 정도 되는 사람을 스타급 영입 인사로 못하나.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노 대표는 허 전 위원장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당대표 경선 때 석패율제 도입을 위해 당시 박지원 당대표 후보를 지원한 사실도 전했다. 그는 "그분(허 전 위원장)은 절대 박지원 후보를 지원할 사람이 아니었다"며 "성향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그랬는데, 그때 박 후보를 지원했다. 그 당시에 박 후보가 약속했던 것이 석패율제였다"고 소개했다. 실제 석패율제가 도입됐더라면 허 전 위원장은 경북에서 당선됐을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당선이 아니라 석패율제를 통한 지역주의 타파였다. "호남에서 콩이면 영남에서도 콩"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그는 누구보다 따랐고 실천했다. 그 역시 우직하게 외길을 걸었던 '바보'였다.
 
민주당 경북도당은 보수의 심장 경북에서 진보의 싹을 틔우기 위해 평생 가시밭길을 걸었던 그를 기리기 위해 '경북도당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또 포항종합운동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해 조문을 받고 있다. 장례위원회는 임미애 위원장과 장세호 전 경북도당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안민석 협력의원단장 등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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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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