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 점포 폐쇄로 낮아진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대안으로 은행 대리업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체국 점포를 은행 업무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지 4년이 지났지만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태인데요. 금융사고 발생시 은행업 위수탁자 간 책임소재와 대리업 희망 지역을 두고 이견이 크다는 점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책임소재·위치선정 협의 '첩첩산중'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은행대리업 도입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은행업무 위탁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체국 등 제3자를 활용해 예·적금, 대출 등 은행 고유업무를 대리하도록 해 취약계층의 대면거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 대책을 재탕하는데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위는 지난 2020년 우체국 점포를 은행 업무에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우정사업본부와 은행연합회, 시중은행 담당자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기도 했지만 '우체국-은행 공동점포' 모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현재 일부 은행이 우체국과 업무 제휴를 맺고 입출금과 조회 등 기본 서비스를 제공할 뿐입니다.
금융위가 은행 대리업 도입을 통해 다른 핵심 업무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우체국과 은행 간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우체국과 제휴 맺은 은행이 수수료 등 서비스 대가를 어떻게 책정할지,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고에 대비한 책임 소재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등에 대한 방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특히 은행들은 금융사고 발생시 공동책임 소지가 큰 만큼 부담이 작지 않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대리업 도입 관련 은행법 개정안을 보면 '은행은 은행대리업자가 은행대리업을 영위하면서 이용자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책무구조도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대리업이 도입된다면 이에 따른 내부통제 책임자 설정 역시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의 대표이사 등 임원들의 내부통제 관련 책무를 명확히 설정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묻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또한 우체국과 은행 입장에서 은행 대리업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지역과 점포가 다른 것도 문제입니다. 은행들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우체국과 선별적 제휴를 일단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우체국 입장에서는 전국 제휴를 목표로 시범 운영하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체국과 시중은행은 업무제휴 방식으로 입출금·조회 등 제한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 서울중앙우체국 창구에 시중은행 입출금 업무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기존 점포 완전 대체 불가
금융위도 은행법 개정을 통한 전방위적인 대리업 허용보다는 혁신금융서비스 활용으로 선회한 모습입니다. 금융위는 오는 6월까지 은행, 대리업 희망사업자 등과 사업방식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이르면 올해 7월에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한다는 계획입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새로운 금융 서비스나 기술이 규제로 인해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입니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인가·영업행위 등의 규제 적용을 일정 기간 유예·면제받고,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신속하게 테스트하고, 사업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규제 샌드박스로는 기존 은행 점포가 제공하던 서비스의 질과 범위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 점포는 2019년 말 6738개에서 2020년 말 6427개, 2021년 말 6121개, 2022년 말 5831개, 2023년 말 5747개, 지난해 10월 말 5690개로 감소했습니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줄었습니다. 2019년 말 3만6464개에서 2020년 말 3만3989개, 2021년 말 3만1789개, 2022년 말 2만9582개, 2023년 말 2만8070개, 지난해 10월 말 2만7157입니다.
은행들의 영업점 축소는 비대면 영업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와 맞물려 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분기 적립식 예금의 신규 가입 중 비대면 가입 비중은 평균 82%(계좌 수 기준)에 달했고, 신용대출 가운데 75%가 비대면으로 이뤄졌습니다. 비대면 신용대출 비중은 2019년 1분기 30.4%에 그쳤지만 2020년 1분기 40%, 2021년 1분기 50%, 2022년 1분기 60%에 달했습니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빠르게 늘면서 은행권 점포도 매년 줄고 있다. 사진은 서울 한 시중은행의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