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새 정부 출범에도 금융권 취업 시장에는 냉기가 여전합니다. 과거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 1순위로 두고 금융권 채용 확대를 압박했음에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는데, 이번 정부는 인공지능(AI) 육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일자리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금융사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는 가운데 신기술 확대와 맞물리면서 일자리 한파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정권초 '일자리 압박' 잠잠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새 정부에서 일자리 확대 압박이 커지지 않을지 금융사에서는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간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일자리 창출를 내걸었으며, 은행 등 금융사에 신규 채용 확대를 요구하는 행태를 반복해왔습니다.
'고용률 70%'를 국정목표로 내세운 박근혜정부에서는 출범 1년간 일자리 확대에 역점을 뒀는데요.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과 여성고용 확대가 대표적입니다. 금융권에서는 특히 '여풍'이란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금융당국 또는 은행 최초 여성 임원이 탄생했습니다. 시간제 일자리 도입에 따라 은행권의 경력단절 여성 고용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일자리정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에서도 대통령 취임 후 첫번째 지시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였습니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일자리위원회에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등 주요 부처가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임기 첫해 금융권은 수천명의 신규 채용 계획으로 화답을 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금융권의 과도한 성과급, 퇴직금 지급을 문제 삼으며 '이자 장사', '성과급 잔치' 등 거센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금융당국까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일자리 확대를 독려했는데요. 그러자 은행권에서는 이듬해 2023년 상반기 공채에서 전년 대비 50% 늘어난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재명정부는 출범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과거 정부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정책 1호 공약은 'AI 글로벌 3대 강국 도약'이며, 상징성을 보여주는 첫 신설 직책도 'AI미래기획수석'입니다.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것 아니라 전통 산업에 AI를 접목해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삼성·SK·LG·롯데·현대차그룹 등 5대 그룹 총수와 가진 간담회에서 "경제 성장 발전을 위해 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면서도 채용 확대 주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룹 총수들이 "AI나 반도체, 바이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힘쓰겠다"고 화답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을 보더라도 일자리 관련 별다른 공약은 보이지 않습니다. 구직활동 지원금을 확대하고 자발적 이직 청년에게 생애 1회 구직급여 지급을 추진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글로벌 기업이 운영 중인 채용 연계형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국가 최고 AI 책임자를 두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AI미래기획수석'이 신설됐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인선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사진=뉴시스)
신규채용 확대 논의 '뒷전'
금융권 노사가 진행하고 있는 임금단체협상에서도 신규 채용 확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모습입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금융산업노동조합는 현재 산별중앙교섭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주요 의제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저출생 문제 해결 위한 근무시간 조정,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 폐지, 신규 채용 확대 등입니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진행하는 산별교섭이다보니 채용 확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까 긴장했다"면서도 "신규 채용 확대가 의제에 포함돼 있지만 노동시간 단축이나 영업환경 개선 등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보조적 의제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금융권 채용 규모 역시 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등 6개 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1200명이 넘는 신입직원을 채용했지만, 올 상반기 그 절반 수준인 600명대에 그쳤습니다. 은행들이 점포 축소, 인력 감축 등 경영 효율화에 나서면서 예전과 같은 대규모 채용이 재현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정보기술(IT) 관련 경력자를 수시채용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비용 관리 등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정기적으로 신입직원을 뽑는 공개채용 제도는 비효율적이라는 판단때문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직 내 IT직원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며 "중요성이 커진 IT 부문을 중심으로 경력직을 수시채용하는 성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보기술(IT) 경력자의 수시채용 확대와 맞물려 금융권 채용시장 전망이 불투명하다. 지난해 8월2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4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