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유지웅·김태은 기자] '미국발 관세 충격'에 '이스라엘발 고유가 여파'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의 하방 압력이 한층 커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와 유가 충격이 장시간 지속될 경우 수출이 줄고 물가는 올라가는 등 경제 충격이 불가피한데요. 이재명정부는 출범 직후 내수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며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도 대비해 왔지만, '중동'이란 돌발 변수까지 터지면서 정책 대응이 한층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반기 '내우외환'에 한국 경제의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의 시나리오별 한층 더 세심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동서 71.9% 수입…한국 '직격탄'
15일 미 <CNBC>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오후 7시(현지시간) 기준 3.7% 급등한 배럴당 75.67달러에 거래됐습니다. 브렌트유 선물도 4.94%(3.67달러) 급등한 배럴당 77.90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전인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에 이어 수도 테헤란의 주요 석유 저장소, 인근의 최대 원유 정제시설까지 공격했습니다. 이란 내 다른 에너지 시설도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적대적 중동국가의 에너지 시설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걸 불문율처럼 여겨왔습니다. 상대국 경제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릴 경우 전 국민이 결사항전에 나서 장기전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불문율이 깨지면서 낮은 확률이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거나, 친미 산유국의 석유 시설을 보복 타격할 가능성마저 제기됩니다. 실제 이란 측은 충돌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엔 전 세계 소비량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하루 1800만~1900만배럴의 석유가 통과합니다. 한국은 원유의 70% 이상, 액화천연가스(LNG) 3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이 해협에 의존합니다.
이란이 안전을 이유로 검문 단속을 강화하면서, 물류를 지연시킬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과거에도 이란은 해양 환경 오염 등을 이유로 선박을 억류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요 원유 생산국 중 하나인 이란이 공격을 당한 만큼, 당분간 국제유가는 우상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제재로 인해 이란의 원유 수출 대부분은 중국으로 향하지만, 중국 정제소가 이란 원유를 구매할 수 없다면 글로벌 원유 가격을 끌어올리는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에너지 수입가 급등으로 인해 국내 물가 압박 수위는 커집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9% 오르며 5개월 만에 1%대로 내려왔는데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로 하향 안정화되는 데엔 공급 확대로 인한 국제유가 하락이 주효했습니다.
유가 급등세가 장기간 이어지면, 정부의 물가경로 예측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달 초 경제전망 발표 때 올해 하반기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를 배럴당 60달러대 중후반으로 전제했습니다.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이란 테헤란 인근 샤란 석유기지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정부 "유류세 인하 연장"
내수와 수출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떠안은 한국 경제에 '중동 리스크'로 인한 물가 상승까지 더해지며,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산 자동차의 대미 수출이 연 4% 감소할 걸로 예상되는 등 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비용 역시 증가합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 기업 비용은 제조업 0.67%, 서비스업 0.17%, 전 산업 0.38% 증가할 걸로 분석했습니다. 미국 투자회사 '밀러 타박'의 매트 말렝 최고시장전략가는 "사태가 장기화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영향을 받으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으로 불확실성이 커졌고, 금·달러 등 안전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원화 약세가 나타났다"며 "환율 변동성과 단기적인 에너지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중동 사태로 성장률이 둔화한다면 내수 침체가 더 심화할 수 있다"며 "내수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건설경기 침체에 있는 만큼, 정부가 교통인프라에 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정부는 16일 '중동 사태 관련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비상대응반을 중심으로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지속하고,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는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이달 말 종료 예정이었던 '탄력세율·개별소비세율 인하'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는 현행 세율대로 2개월 추가 연장합니다. 정부는 에너지 수급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물류 경색 우려가 확대되면 임시선박 투입 등 추가적인 지원방안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