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상대국들에 ‘상호관세’ 적용을 위한 관세율 서한을 순차적으로 발송하겠다고 예고하며 사실상 ‘최후 통첩’에 나섰습니다. 상호관세 유예 시한을 앞두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주요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에 가뜩이나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영 환경 악화로 2분기 실적에 먹구름이 낀 재계는, 상호관세 시한폭탄에 따른 부정적 전망 등 전방위적 ‘퍼펙트스톰’ 우려에 근심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7일 외신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상대국에 관세 서한을 보내거나 협상 타결을 보는 것으로 9일까지 무역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저지주에서 워싱턴DC의 백악관으로 돌아오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과 만나 “월요일(7일·현지시각)에 서한을 발송할 예정이며 12개국이 될 수 있고, 아마도 15개국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몇몇 국가들과) 합의를 이뤄왔다. 따라서 우리는 서한(발송)과 몇몇 타결의 조합을 갖고 있으며 일부 국가와는 협상이 타결됐다”며 “나는 우리가 대부분 국가와의 협상을 9일까지 마무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한이 아니면 합의”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4월2일 발표한 상호관세의 유예기한이 마무리되는 9일까지 일부 국가와 협상의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일방적으로 관세율을 통보하고 무역협상을 끝내겠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 조건을 제시한 뒤 협상 시한을 두고 몰아붙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전술입니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관세 서한’ 발송 국가 중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경우 한국은 고율의 상호관세 폭탄을 안고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는 만큼 부담도 가중됩니다. 현재까지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합의한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뿐입니다.
5일(현지시각)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 D.C 미국무역대표부(USTR)에서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을 갖고 있다. (사진=산업부)
정부 역시 ‘막판 협상’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선 상황입니다. 정부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5일과 6일 잇달아 워싱턴DC로 급파해 합의 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서 출국한 여 본부장은 5일(현지시각)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 관세를 포함한 무역과 산업 협력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미국의 비관세장벽 철폐 요구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하면서 관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가 주를 이뤘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위 실장은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관세 협상과 안보 사안 등 주요 현안을 언급하며 “협의 국면이 중요한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어 제 차원에서 관여를 늘리기 위해 방미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노력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에 재계의 근심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내수 부진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관세 시한폭탄까지 더해지면 하반기 대미 수출 감소 폭이 커지는 등 ‘퍼펙트스톰’의 직접적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날 잠정실적을 발표한 LG전자는 관세와 수요 위축 등 이중고로 전년 동기 및 전분기 대비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LG전자는 “주요 시장의 소비심리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2분기 들어 본격화된 미국 통상정책 변화가 관세 비용 부담과 시장 내 경쟁심화로 이어지는 등 비우호적 경영환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습니다.
8일 잠정실적을 발표하는 삼성전자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증권가 전망치(컨센서스)는 매출 76조3319억원, 영업이익 6조2713억원입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7일 LG전자 본사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모습. (사진=뉴시스)
더 큰 문제는 하반기입니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생산기지의 모든 북미 수출 제품들이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가전업계는 미국과 20%의 관세율로 합의를 마친 베트남을 비롯해 멕시코 등 글로벌 각국에 주요 북미 수출 생산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관세가 46%에서 20%로 줄어 최악은 면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적은 수치가 아니기에 사실 부담이 있다”며 “상호관세의 경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주요 거점 지역 국가의 협상 결과까지 다 지켜봐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품목별 관세 폭탄을 맞은 자동차와 철강업계도 하반기 ‘고난’의 길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1일~25일 기준)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21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4% 감소했습니다. 철강의 경우에도 품목 관세 부과 후 철강 수출액은 눈에 띄게 급감한 상태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5월 철강 수출액은 3억2700만달러로 전년 동기(3억9000만달러) 대비 16.3% 감소했습니다. 철강은 최대 50%의 고율 관세가 부과된 터라 상호관세의 압박을 비껴 갈 것이란 긍정적인 기류도 읽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인 성향에 따른 정책 변경의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는 정부의 협상 결과에 기대를 걸면서도, 근심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협상을 잘 하더라도 트럼프 변덕에 의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정부가 협상을 잘 진행해 관세 피해를 최소화하는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영 환경 자체가 어려운 상태에서 관세 타격까지 커지면 시장 전반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협상 결과를 잘 이끌어 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