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은 제77주년 제헌절이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포된 날이자 헌법의 의미와 가치, 기본 정신 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이다. 특히 올해 제헌절은 각별한 의미가 부여됐다. 12·3 불법계엄으로 헌법의 가치가 무너질 뻔했지만 민주시민의 힘으로 이를 막아낸 뒤 처음 맞는 제헌절이었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축사를 통해 '국민이 헌법의 수호자'라는 말로 이날의 의미를 부여했다. 우 의장은 "어쩌면 헌법과 국회를 잃을 뻔했던 그날,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이었고 국민은 가장 강력한 헌법의 수호자였다"며 "국민이 헌법을 지켜낸 나라"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초유의 국가적 위기였던 12·3 내란조차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극복해냈다"며 "전 세계가 감탄한 우리의 회복력 역시 국민이 지켜낸 헌법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수호의 책무는 군인에게도 있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 윤석열의 12·3 불법계엄에 '충성'을 이유로 맹목적으로 따랐던 군인들은 그날 과연 자신이 목숨을 걸고 수호해야 할 대상이 '헌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군인에게 충성이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군인복무기본법 제20조(충성의 의무)는 군인이 충성할 대상을 '국가와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군도 마찬가지다. 미국 육군 교리(ADP 6-22)에는 충성의 대상을 헌법, 육군, 소속 부대, 전우로 규정하고 있다. 이 교리는 헌법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며 "헌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충성하면서 헌법에 충성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12·3 불법 계엄은 군인의 헌법 수호 책무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줬다. 모든 군인들이 충성의 대상이 '헌법'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면 12·3 불법 계엄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군인을 대상으로 한 헌법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군이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전군이 하나의 가치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군을 헌법과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군대로 되돌리기 위해 군 교육기관의 헌법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게 안 후보자의 의지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헌법의 순간'의 저자 박혁 박사는 "온 국민이 주역이었던 2024년 '헌법의 순간'에 군은 어땠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며 "무엇이 헌법의 위기를 초래했는지 꼭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민이 부여한 헌법 수호의 책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이가 총칼로 '헌법'을 짓밟으려 할 때 무비판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군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군대를 위해서 헌법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란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내란의 전모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실체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게 먼저겠지만 다시는 헌법 유린 시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등병부터 대장까지 모든 군인이 헌법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헌법이 충성의 대상임을 잊지 않도록 모든 군인을 대상으로 헌법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