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이효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배임죄 제도 개선을 예고했습니다. 미국 관세 협상을 앞두고 정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대규모 대미 투자가 관세 협상의 주요 카드로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에 당근을 제시한 셈입니다. 그간 정부·여당이 상법 일부개정안,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밀어붙이며 재계에선 반발이 거셌는데요. 이날 정부는 '100조원 국민펀드' 등 산업 지원책까지 함께 내놓으며 재계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대규모 대미 투자' 카드 위한 '당근책'
이재명 대통령은 30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에서 "한국에서 기업 경영활동 하다가 잘못하면 감옥 가는 수가 있다며 국내 투자를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며 "배임죄가 남용되면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제도적 개선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행정 편의적인 또는 과거형, 불필요한 또는 꼭 필요하지 않은 그런 규제들은 최대한 해소 또는 폐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과도한 경제 형벌로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부 내 경제 형벌 합리화 TF도 곧바로 가동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때아닌 '배임죄 완화'는 대미 관세 협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주요한 카드는 '대규모 대미 투자'입니다. 앞서 미국은 일본과 관세 협정에서도 관세율 인하 대가로 대미 투자액 상향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정부가 투자의 주체가 될 기업에 당근책을 제시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최근 정부·여당은 기업 규제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며 재계로부터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등의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공포됐습니다. 이어 집중투표제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 담긴 2차 상법 개정안도 지난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노란봉투법도 속도가 붙었습니다. 같은 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제2조 제2호)와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제3조)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오전 12개 업종별 단체와 공동성명문을 발표하고 국회에 노란봉투법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심의를 중지해야 한다"면서 "부디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 법안이 가져올 산업 현장의 혼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주길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재계의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직접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약속한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정부 초기 평가를 가름할 수 있는 만큼 기업과 손을 잡고 협상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를 열고 불필요한 기업활동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100조 국민펀드 조성 방안 마련 약속
이 대통령은 이날 기업 활력 회복과 투자 분위기 확대도 독려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100조원 이상 규모의 국민펀드 조성 방안을 조속하게 마련해서 향후 20년을 이끌 미래전략산업에 투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규제 혁신을 포함한 산업별 발전 방안도 조속하게 만들어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산업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00조 국민펀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100조원 규모의 투자 자금을 조성해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투자한다는 이재명정부 정책 구상 중 하나입니다.
비상경제점검 TF는 '성장전략 TF'로 명칭이 바뀝니다. 이 대통령은 "부처의 진용들이 다 갖춰졌기 때문에 장기적 과제를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 TF로 전환해야겠다"며 "이제는 부총리께서 TF를 맡아서 민관과 충분히 협의하고 성장을 회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주요 정책들을 발굴해서 안정적으로 집행해 나가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을 보고했습니다. 혁신 생태계 구축과 기업 활력 제고를 통해 성장 동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구체적 초혁신 아이템을 목표로 선정하고, 모든 경제 주체가 협업해 세계 1등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가시적 성과를 창출한다는 계획입니다. 기재부는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창업·인력·금융·재정·세제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을 열고 "이 대통령은 규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더 가속화해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며 "새 정부 출범 초기는 국민 관심과 기대 집중되는 시기인 만큼 각 부처는 기존 법령의 틀을 넘어 보다 크고 과감하게 사고하며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정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 형벌 합리화 TF'에 대해서는 "기재부 1차관과 법무부 1차관이 공동 단장을 맡는다"며 "산업부와 국토부, 금융위, 공정위, 중기부 등 각 부처가 경제 법령에 관한 처벌 조항을 전부 조사해서 정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이날 논의 결과를 반영해 오는 8월 중 경제성장 전략을 확정 발표하고 9월 초 2026년 예산안 및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