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신호탄…첫 타깃은 '석유화학'

정부, 석화산업 구조 개편 발표…'자구 노력' 촉구
NCC 최대 370만톤 감축…연말까지 사업 재편안 제출
'선 자구노력-후 정부지원' 재확인…'사즉생' 요구

입력 : 2025-08-20 오후 4:25:58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했습니다. '선 자구 노력, 후 정부 지원' 원칙을 재확인하며 '사즉생' 각오로 석유화학업계에 대규모 설비 감축과 사업 재편을 공식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업계는 최대 370만톤(t)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감축을 목표로 연말까지 구체적인 사업 재편 계획안을 제출해야 합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생산 감축에 나서는 기업엔 맞춤형 지원을 하되, 무임승차 하려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기업이 자구 노력을 담은 사업 재편안을 먼저 마련해야만, 금융·세제·연구개발(R&D) 등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재명정부의 구조조정 바람이 혈세를 축내는 공공기관 통폐합에 이어 민간으로까지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구윤철 "위기 극복 해답은 과잉 설비 감축"…'뼈 깎는' 구조조정 예고
 
정부는 20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이재명정부 첫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구 부총리는 "중국·중동 등 글로벌 공급 과잉이 예고됐음에도 국내 석화업계는 과거 호황에 취해 오히려 설비를 증설한 데다, 고부가 전환까지 실기하는 등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위기 극복의 해답은 과잉 설비 감축과 근본적 경쟁력 제고"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NCC 설비는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있는 여수(4개)와 대산(4개), 울산(2개) 등에 총 10개가 있습니다. 이들 설비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간 1290만톤에 달합니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 완공, 하반기 시운전을 목표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샤힌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경우 기초 원료인 에틸렌을 연간 180만톤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중국 등 해외에서 저가 제품들이 밀려오면서 글로벌 공급 과잉이 심화하고 있는데, 국내 업체 간 경쟁까지 심화하면서 성장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게 석화업계의 현실입니다. 
 
이에 정부는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 '구조 개편 3대 방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3개 석유화학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구조 개편 동시 추진 △충분한 자구 노력 및 타당성 있는 사업 재편 계획 마련 △정부의 종합 지원 패키지 마련 등 '정부 지원 3대 원칙'도 제시했습니다. 
 
정부는 '개입'보다는 업계의 '자구 노력'을 촉구했습니다. 구 부총리는 "주요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 재편 협약이 체결된다"며 "최대 370만톤 규모의 NCC 감축을 목표로 연말까지 각 사별로 구체적 사업 재편 계획을 제출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업계를 향해 "'버티면 된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안이한 인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스스로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어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 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사업 재편 미루거나 무임승차 지원 배제…단호히 대응"
 
정부는 각 기업이 강력한 자구 노력이 담긴 사업 재편안을 우선 마련해야만 금융, 세제 등의 맞춤형 지원을 해주겠다는 '선 자구 노력, 후 정부 지원' 원칙도 재확인했습니다. 구 부총리는 "정부도 방관하지 않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겠다"며 "업계가 제출한 계획이 진정성 있다고 판단되면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R&D 지원, 규제 완화나 금융, 세제 등 종합 대책을 적기에 마련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사업 재편을 미루거나, 무임승차 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날 오후 NCC를 보유한 10개 석유화학 기업들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자율협약식'도 가졌습니다. 업계는 총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를 감축하겠다는 공동 목표를 내놨습니다. 이는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1470만톤)의 18~2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협약에 참여한 업체는 LG화학·롯데케미칼·SK지오센트릭·한화토탈·대한유화·한화솔루션·DL케미칼·GS칼텍스·HD현대케미칼·에쓰오일 등입니다. 
 
김 장관은 "석유화학 산업이 미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 개편만이 유일한 돌파구"라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업 재편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자구 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들 설비 감축의 혜택만을 누리려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목표량과 시한을 제시한 만큼 지지부진했던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연말까지 불과 4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경쟁력 강화 등 자구안을 마련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또 공정거래법상 담합 규제 유연화와 전기료 인하 등 보편적 지원이 빠졌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 사안을 산업부에서 말할 사항은 아니다"면서도 "공정위와 산업부, 석유화학 관계 부처가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이 사업 재편 계획을 마련하면 정부가 적절한 지원 방안을 밝히는 게 순서"라며 "지원 패키지가 신속히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업별 상황이 다르고 사업 재편 방향도 달라 일률적 지원은 적절치 않다"며 "각 기업에 맞는 금융·세제·연구개발·규제 완화 대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 참석해 이영준 롯데케미칼 사장, 정임주 HD현대케미칼 대표,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사장, 남정운 한화솔루션 사장, 강길순 대한유화 사장, 나상섭 한화토탈에너지스 대표, 류 열 S-OIL 사장, 허성우 GS칼텍스 부사장, 서중식 DL케미칼 부사장, 김상민 LG화학 석유화학부문 대표,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엄친완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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