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K-웨이브의 미래)⑥예산 불었지만…현장 예술인 삶은 여전히 '빈틈'

문체부 2026년 예산 7.8조원으로 10% 증액
남인우 "탑다운 지원 한계…검열·생태계 회복 우려"
예술강사지원 내년 136억원…예술교육 기회 축소

입력 : 2025-09-11 오전 6:00:00
이 기사는 2025년 09월 8일 06: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K-팝을 비롯한 드라마·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중동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K-콘텐츠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과 더불어 일자리 창출, 수출 경쟁력 강화까지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주요 26개국 잠재 방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한국 관광 선호도가 83%, 실제 방문 의향이 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40.2%는 서울만을 한국의 주요 관광지로 인식하고 있는 한계도 드러났다. 이에 정부는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을 적극 활용해 저출생·초고령 사회 진입으로 심화되는 지역 소멸 위협 요인을 줄여나가기 위해 문화산업 육성에 나섰다. <IB토마토>는 K-웨이브 확산의 실태와 개선 방향을 점검하고 향후 육성 전략을 살펴 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이조은 기자] #청년 심규현씨(만 27세, 가명)는 2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현재 그는 월세 약 40만원짜리 방 한 칸에서 살며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출연료 10만원 이하의 이른바 '자원봉사' 배우 모집에도 지원자가 200~300명, 많게는 700명까지 몰리지만 결국 단 한 명만이 기회를 얻는다. 그 역시 한 웹드라마 오디션에서 최종 주연 후보 3인에 올랐으나 이미 내정돼 있던 아이돌 배우에게 배역을 내줘야 했다. 다행히 단편영화 주연으로 캐스팅됐지만 출연료는 40만원으로 겨우 월세 정도를 벌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 예산안을 발표한 가운데 문화예술 부문 예산을 2.6조원으로 대폭 확대키로 했지만, 청년예술인 지원은 창작활동에 국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정부의 탑다운 방식 지원이 예술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학교 예술강사 지원금 삭감에 대한 논란은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의 지원책이 예술 생태계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문화예술 예산 확대…생계형 예술인까지 닿을까
 
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6년 예산안은 7조7962억원으로 올해 대비 10.3% 증가했다. 특히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내년 예산은 2조6388억원으로 올해 예산 2조3824억원보다 10.76% 늘었고, 콘텐츠 부문은 26.5% 늘어난 1조6103억원이 배정됐다.
 
새로 신설되는 제도로는 예술산업 금융지원과 예술인 복지금고가 있다. 또 청년예술인(만 18세~39세)을 위해 180억원 규모의 창작 지원금도 내년에 처음 투입된다. 그러나 지원이 창작활동에 한정돼 있어 음악·연극·연기 등 생계가 막막한 청년예술인들에게까지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2024년 문체부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업예술인의 비율은 해마다 낮아졌다. 2018년 57.4%에서 지난해 52.5%로 낮아졌고, 이 중 정규직 비율은 같은 기간 7.0%에서 5.4%로 줄었다. 반대로 일용직·시간제 종사자는 10.7%에서 30.4%로 3배가량 늘었다. 겸업 예술인의 81.7%는 예술 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남인우 연출가. 필리핀 톤도 섬에서 ODA사업 일환으로 어린이 예술교육 교류 활동 중이다. (사진=줌 갈무리)
 
남인우 연출가 "검열 없는 생태계 복원이 먼저"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은 <IB토마토>와 줌(ZOOM) 미팅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탑다운 방식 지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며 “청년예술인의 진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 생태계 회복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웅 평론가의 비상계엄 비판 원고를 게재 직전 취소해 ‘검열 논란’이 일었고, 지난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도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는 작품이 전시되자 전시장 폐쇄 사태가 벌어졌다.
 
남 연출가는 “아직도 블랙리스트와 검열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됐다. 우리 미술관에서는 정치적 견해를 얘기할 수 없다는 핑계로 원고를 안 실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사전 검열이 국가기관에서 공공연하게 아직까지 벌어진다는 게 개탄스럽다”라며 “최근 성폭력 위계질서나 젠더 이슈 등 문제는 지원을 해준다. 단, 국가 기관에서 예술가의 창작과 관련한 문제를 억압하는 경우에도 인권위원회와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법령이 제정돼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문화 산업 활성화를 위해 콘텐츠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것도 다소 우려가 된다는 입장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고 대학로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미국 뮤지컬 토니상 6관왕을 달성했지만, 단기적인 성과보다도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전설적인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사례도 언급했다. 독일의 소도시 부퍼탈은 피나 바우쉬를 부퍼탈 시립무용단 감독으로 영입하며 극장과 창작지원금을 전폭 지원했다. 덕분에 부퍼탈에는 관광객들이 매년 피나 바우쉬 공연을 보려고 몰려왔다. 피나 바우쉬도 1976년부터 2009년까지 탄츠테아터 부퍼탈 무용단 감독으로 일하며 안정적으로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남 연출가는 “우리나라도 지역 문화회관 공실률도 줄이고 극장도 제공하게 상주단체 제도를 마련했지만, 단순 임대만 해준 격이라 피나바우쉬 케이스처럼 지역 생태계를 붐업시키지 못했다”라며 “일본이나 북유럽은 초중고등학교에 예술가들이 가서 적극적으로 공연하고, 학생들도 작품을 고르고 1000원이라도 티켓을 사는 훈련이 돼 있다. 우리나라는 작품을 뽑아 파견하는 탑다운 방식이라 무료인데 기금이 끊기면 끝난다. 생태계를 새롭게 복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예술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사진=김태임 예술강사 제공)
 
예술강사지원사업 삭감…교육 기회 위축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 예산 삭감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2023년 574억원이던 예산은 2024년 287억원으로 반 토막 났고, 올해는 80억원까지 줄었다. 이후 49억원이 추경 편성돼 129억원으로 다소 늘었지만, 여전히 2년 전 수준에는 못 미친다. 내년도 예산도 135억8700만원에 그쳤다.
 
예산 축소는 수업시수 감소로 직결됐다. 2023년 152만9072시간이던 수업시수는 지난해 36만시간으로 줄었고, 예술강사 1인당 평균 시수는 305시간에서 78시간으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강사 평균 연봉도 1200만원에서 12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김태임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대표 겸 예술강사는 <IB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재작년에 이어 작년, 그리고 올해까지 시수가 말도 안 되게 줄면서 강사들끼리 경쟁을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유지가 안 되는 시수라서 학교 수업만 하던 분들은 아예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는 경우가 늘어났다”라며 “직장은 20년을 다니면 퇴직금이라도 나오는데 우리는 예산이 끊기면 아예 생계가 끊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평등한 예술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당초 예술강사 시스템은 26년 전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예술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아르떼)이 예술강사를 선발해 국악, 무용, 연극, 영화, 만화·애니메이션 등 8개 분야에서 정규 수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운영비만 부담하고 인건비는 각 시·도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으로 충당하는 구조라 지방 예산이 삭감되면 해당 지역에서는 수업 자체가 어려워진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은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렸다. 
 
서경원 극단 살뮈 연출 겸 예술강사는 <IB토마토>와 통화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자본주의 사고 체계에서 바라보고, 출력값을 희망하면 지속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예술교육은 멈출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정부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IB토마토>와 통화에서 “일단 정부안은 이 정도로 편성이 됐지만 저희도 만족스러운 금액은 아니라 증액을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며 “지방교육재정과도 매칭되는 사업이다 보니 시도교육청과도 협의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조은 기자 joy8282@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조은 기자
SNS 계정 : 메일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