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출범을 선언했다. 공공기금 75조원을 마중물로 삼아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고, 향후 5년간 인공지능(AI)·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재정 투입을 넘어 미래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고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해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포석이다.
국민성장펀드는 당초 100조원 규모였던 계획에서 50조원이나 더 덩치가 커졌다. 이는 저성장 국면에 빠진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과감한 국가 차원의 투자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이번 계획에는 이재명정부가 강조해온 '생산적 금융'도 윤곽을 드러냈다. 생산적 금융은 기존 담보 중심의 자산 투자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국민성장펀드가 부동산 시장 등 비생산적 분야에 묶여 있는 시중 자금을 첨단전략산업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과거 관제펀드들을 살펴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펀드', 박근혜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정부의 '뉴딜펀드' 등 역대 정부가 야심 차게 출범시킨 대규모 펀드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권 교체와 함께 정책 연속성이 흔들리거나, 민간 자금 유치가 지지부진해 수익률이 저조했으며, 투자 집행도 소극적으로 흐른 사례가 반복됐다.
국민성장펀드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투자 대상 산업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 둘째, 중장기 관점의 운영 구조와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필수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의 연속성이 흔들렸던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셋째, 금융 규제의 합리적 개선과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정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국민성장펀드는 이제 막 밑그림을 그린 단계다. 이름 그대로 국민과 함께 국가의 미래를 성장시키는 펀드로 자리매김하려면, 단순한 '돈 풀기'를 넘어선 정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또한 당장의 가시적 성과에 매몰되기보다는 중장기적 시야에서 국가전략산업의 성장 기반을 다지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규모가 성패를 결정하지 않는다.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정책의 디테일이다.
오승주 정책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