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이니셔티브가 남북 관계 파탄을 '끝'낼 수 있을까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북, 비핵화 절대 부정…돌파구 고심

입력 : 2025-09-26 오전 6:00:00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즉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굴곡진 남북 관계의 역사가 증명해왔던 불변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하여,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에 우리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공존을 위한 'END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이를 놓고 처음에는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실행 순서, 즉 단계론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교류를 쌓아 적대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를 이뤄내겠다는 구상 아니냐는 것이다.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뉴시스)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 의미와 관계, 추가 보완 필요
 
언론 등에서는 그렇다면 △남·북 간 또는 북·미 간 교류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관계 정상화의 의미는 남·북 관계를 두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인가, 북·미 수교까지 포함하는 것인가 △비핵화를 통한 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인가 △수교를 뜻할 수도 있는 관계 정상화가 비핵화보다 우선한다면, 사실상 북한 핵을 용인하겠다는 것인가 등의 의문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곧바로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는 "우선순위나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원칙들을 중심으로 한 포괄적 접근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요소가 서로를 추동하면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 한쪽에서만 성과를 내도 다른 요소를 견인하도록 추진해가겠다는 뜻이다. '관계 정상화'의 의미는 "극도로 대립 중인 남북 관계를 신뢰 관계로 바꾼다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두 국가론' 시각에 대해서는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남북 관계는 통일이 될 때까지의 '잠정적 특수 관계'라는 입장"이라고 못 박았다. 
 
위 실장이 곧바로 대응하면서 가닥은 잡았지만, 정교한 추가 보완 설명도 필요해 보인다. 대통령 연설문의 END 대목 바로 뒤에는 "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고, '두 국가론'에 대한 의문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비핵화 3단계 방안 관련, 이 대통령이 '동결(freeze)'과 '중단(stop)' 표현을 함께 쓰고 있는 것도 주의 깊게 볼 만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보도된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북한 핵 해결 로드맵으로 '동결→축소→비핵화' 3단계 안을 제시했는데, 이달 18일 공개된 <타임> 인터뷰에서는 '중단→감축→궁극적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세계 최대 다자외교 무대인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중단→축소→폐기'라고 했다. 이를 두고 '동결'은 북한의 신고와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검증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인데 비해 '중단'은 이런 절차를 생략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만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 대통령은 왜 '동결'과 '중단' 표현을 함께 쓸까
 
하지만 이는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완강한 상황에서 대응 폭을 유연하게 확장하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중단'이 '동결'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그 직전인 22일 <BBC> 인터뷰에서는 북한 핵 '동결'을 강조하면서 "임시적인 비상 조치"로서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다. 
 
'END 이니셔티브'는 '페이스메이커'론, '3단계 비핵화'(동결→축소→비핵화)론에 이어 이 대통령이 세 번째로 내놓은 대북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구상과 마찬가지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파탄 상태에 빠진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되살려내야 한다는 고심이 그 배경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단언하건대 우리에게서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천명하면서 미국에게 '비핵화를 의제로 삼지 않는 대화'에만 응하겠다는 '조건부 회담' 의사를 밝혔다. 반면 남한에 대해서는 이런 조건도 없이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사실상 북한 핵 보유를 묵인한 상황이다.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을 맞아 비서방권 26개 국가들이 모인 가운데 김 위원장이 톈안먼 망루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함께 선 장면이 이를 웅변한다. 
 
한국은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할 수는 있어도 내려놓을 수는 없다. 한·미·일은 외교 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했고, 주요 7개국(G7) 외교 장관은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은 남북 대화를 끌어내기도 힘겹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당장은, 10월 말 열리는 경주 APEC 등이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이 될 것인지 주시할 수밖에 없다. 1기 시절 김정은과 세 번 만났고,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김정은에게 호의적인 발언을 계속해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에는 "올해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미국 당국은 김정은에게 보낸 트럼프의 친서 수령을 북한 외교관들이 거부했다는 보도를 부인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김정은도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트럼프에 대해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혹시, 2019년 6월30일에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트럼프·김정은 깜짝 회동'이 재연될 수 있을까. <로이터통신>은 23일,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지금 당장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위성락 실장도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현재 북·미 간에 이렇다 할 논의가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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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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