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인 가운데, 미국 경제가 예상 밖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달러당 원홧값은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여겨졌던 1400원대를 돌파했고, 연일 상승하던 국내 증시는 3400선대가 무너졌습니다. 한·미 간 불협화음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원화 자산 회피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대외 불확실성이 고조되며 한국 경제가 한층 가파른 하방 압력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돌아온 '킹달러'…트럼프 압박에 원화 약세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 대비 8.4원 오른 1409.0원에 개장한 뒤, 11.8원이나 오른 1412.4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을 개장하자마자 곧바로 1410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전 거래일보다 3.1원 오른 1400.6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치며 지난 8월1일(1401.4원) 이후 두 달여 만에 처음으로 1400원을 돌파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간밤 야간 거래에서도 상승 폭을 확대하며 장중 한때 1411.0원까지 올랐습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2·3 비상계엄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전 수준인 1300원대 후반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안정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엔 미국 물가 상승세 둔화 전망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한동안 약세 흐름을 지속해오던 달러 가치는 지난 17일(현지시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고, 달러 강세 속 한·미 간 관세 협상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했습니다.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여겨지는 1400원대 환율은 금융위기나 탄핵 등 대형 이슈로 불안정한 시기에 등장했던 수치로, 시장 참여자들에겐 경고등으로 인식됩니다.
특히 이날 원·달러 환율 급등 배경에는 한미 관세 합의에 따른 3500억달러 대미 투자금 논란과 미국의 예상 밖 경기 호조로 달러가 강세를 보인 영향이 컸습니다. 실제 한·미 무역 협상에서 3500억달러 직접투자와 통화스와프를 둘러싼 양국의 이견이 부각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그것은 선불"이라고 강조하자 외화 유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가 3.8%로 발표되면서 시장의 예상을 큰 폭으로 웃돌았습니다.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은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자 달러 가치를 밀어 올렸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증시도 '비명'…하방 압력 커진 한국 경제
미국발 이슈는 국내 증시까지 덮쳤습니다. 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월 들어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던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0.89% 내린 3440.39로 출발한 뒤, 낙폭을 확대하다 10거래일 만에 처음으로 3400선 아래로 내려앉았습니다. 이후 코스피는 장중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2.45% 떨어진 3386.05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날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처음으로 1400원대까지 오른 상황에서도 순매수를 이어갔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날은 '팔자'로 전환한 것입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협상 제동, 트럭·의약품 등에 품목 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에 국내 증시가 하락 출발했다"며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이 상향 조정되면서 달러 강세가 심화했고, 원 ·달러 환율도 1400원을 돌파하면서 시장에 불안감이 퍼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3500억달러는 선불로 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한미 관세 협상을 둘러싸고 노이즈가 커지고 있다"며 "환율이 1410원대로 상승한 점도 관세 협상 난항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지속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진다는 점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협상의 결말이 어떻든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의 예상입니다. 증시 역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대규모 동반 매도를 피할 수 없다는 관측입니다. 이 같은 금융 불안은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간신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에 하방 압력이 가중되면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 투자 협상을 둘러싼 불안감이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대미 투자 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적으로 환율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합의가 도출되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경제에는 부정적인 압력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