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문재인 생각

입력 : 2025-09-26 오후 5:21:28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2017년 1월17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문 전 대표는,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를 펴내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돌입하던 차였다. 전에 다니던 신문사에서 민주당 출입기자이자 문재인 마크맨이었던 나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 말미에 문 전 대표에게 질문을 던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부부가 활짝 웃으며 차담을 하고 있다. 이낙연 페이스북 캡처
 
‘문 전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개혁에서 실패해 가장 반동적인 정권인 엠비정권을 출범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본인이 집권하게 된다면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있다면 그 복안을 알려달라.’ 
 
내 질문은 대략 이랬다.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그는 그날 ‘참여정부의 실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믿고 지켜봐달라’는 취지로 답했다. 구체적인 답을 원했는데 원론적 차원의 대답만 돌아온 점도 아쉬웠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인데도 설득력 있는 비전이 제시되지 못한 점이 못내 걸렸다. 
 
이후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가 된 뒤 마크맨들과 유세 과정에서 저녁식사를 했을 때, 기자들의 돌직구 질문에도 그는, 예의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다. 참모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정치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 좋은 인상 외에 이명박근혜 정권으로 무너진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 확신은 좀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게 날 불안하게 했다. 
 
그렇게 그는 당선됐고 우리는 이명박근혜보다 훨씬 인간적인 대통령을 갖게 됐지만, 그뿐이었다.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윤석열정부의 탄생으로 허언이 됐다. 나아가 노무현정부의 실패보다 문재인정부의 실패가 더 뼈아프고 치욕적인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윤석열이라는 저 한심한 괴물이 문재인정부에서 배태됐기 때문이었다. 윤석열을 날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원칙주의자인 대통령은 끝내 그러지 않았다. 
 
얼마 전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문 전 대통령을 만난 밥을 먹을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많은 이들이 이 전 총리의 뻔뻔한 작태에 혀를 차면서도, 아울러 적지 않은 이들은 이런 이낙연을 만나서 허허실실 웃고 있는 문 전 대통령의 속없음에 혀를 내둘렀다. 
 
착한 사람이 좋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높긴 하겠지만, 착한 대통령이 곧바로 좋은 대통령인 것은 아니다. 착함을 지키기 위해 때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착한 대통령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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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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