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는 '한철 살기'를 넘어선 국가 전략인데 그 출발은 단순합니다. "여름 석 달은 시원한 곳에서! 겨울 석 달은 따뜻한 곳에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은사마Ⅰ이 국내에서 은퇴자 도시 조성을 법제화한 데 이어, 은사마Ⅱ는 시야를 세계로 확장합니다.
이 전략은 '창업국가 대한민국'이라는 과제에 뒤이어 제2의 과제로 자리매김했으면 합니다. 제1과제가 기술 기반의 중소·벤처·스타트업 중심으로 한 혁신경제라면, 제2과제는 은사마Ⅱ를 통해 은퇴 세대의 삶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입니다. 이미 한국인의 글로벌 문화적 위상은 높아졌고, 은퇴자들의 해외 거주도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의미 있게 정책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입니다.
게다가 700만 재외동포, 180개국에 흩어져 있는 250만 재외국민, 그리고 246만명에 이르는 국내 외국인(탈북 새터민 포함)이라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는 은사마Ⅱ의 실행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이 네트워크를 플랫폼화한다면 은사마Ⅱ는 단순한 생활 모델을 넘어 국가 전략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발상의 대전환, 디지털 다물주의
은사마Ⅱ는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초고령 사회에 적합한 주거·건강 해법을 제시하고 기후위기 시대의 여름·겨울나기 모델을 제공하며,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확산시키는 국경 없는 생활양식을 뒷받침합니다. 동시에 개방형 통상국가의 DNA와 한국인의 북방 노마드 기질을 바탕으로 세계 최다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로서의 위상과 180개국의 자유여행이 가능한 강력한 여권(旅券) 파워를 활용한 글로벌 이동성을 보장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기후변화는 대규모 인구 이동, 즉 문명적 엑소더스를 촉발해왔습니다. 은사마Ⅱ는 이 흐름을 한국적 조건 속에서 재해석합니다. '디지털 다물주의', 즉 세계 각지에 분산된 거점 마을을 네트워크화해 하나의 생활공동체로 엮는 새로운 개척자 정신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좁은 한반도의 남녘을 넘어 세계 속에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거점도시의 11대 요건
은사마Ⅱ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점도시 선정이 핵심인데 그 요건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1. 생활비가 합리적이고 가성비가 뛰어나야 합니다.
2.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없어야 합니다.
3. 강력범죄가 없어서 안전해야 합니다.
4. 현지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5. 한국인의 재능 기부 등 사회 참여의 기회가 많아야 합니다.
6. 한국과의 비행거리는 5시간, 시차는 3시간 이내여야 합니다.
7. 인근 도시들이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8.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등 교류 프로그램이 왕성하며 영사(領事) 서비스의 만족도가 높아야 합니다.
9. 글로벌 식량 안보와 에너지 공급망 전략에 기여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0. 양국 간 산업과 문화 교류가 활발하고 노동력의 왕래가 왕성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11.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인구 사이즈와 젊은 층이 많아서 ODA나 재능 기부의 혜택을 오랫동안 인식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11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도시가 은사마Ⅱ가 지향하는 글로벌 은퇴 마을의 적합한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1차 거점도시: 비엔티안, 블라디보스토크
따라서 이 기준에 부합하는 1차 거점도시는 라오스의 비엔티안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일 것입니다. 비엔티안은 겨울철에 온화한 기후를 뽐내는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 중 가운데 위치해 어느 나라든 관광이 용이하며 ODA 협력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도시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기후변화로 인한 배추·명태 등 먹거리 북방경제협력의 거점으로서 의미가 상당히 큽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구려·발해로부터 항일무장투쟁까지 우리 민족의 족적이 여실히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두 도시에서 은퇴자 마을 모델을 먼저 실험한다면 향후 다양한 도시로 확장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은사마Ⅱ가 던지는 경제·사회적 의미
은사마Ⅱ는 단순한 은퇴자 거주 모델이 아닙니다. 그것은 초고령 사회를 돌파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이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새로운 생활양식이며, 동시에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입니다. 은퇴 세대의 글로벌 소비력은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 절반에 걸쳐 새로운 시장을 열 것입니다. 해외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현지에서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되어 경제와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나아가 거점도시는 한국형 ODA와 글로벌 공급망 전략, 그리고 문화 교류 확대를 위한 실질적 기반이 됩니다.
결국 은사마Ⅱ는 개인의 은퇴 행복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비전입니다. 오늘의 은퇴 세대는 단순히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겸손한 선진 한국인의 뉴 클래스(new class)이며 국가 경제의 잠재적 자산입니다.
은사마Ⅱ는 개인의 은퇴 모델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제 전략입니다.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 은사마Ⅱ는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21세기형 '글로벌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운동'입니다.
(추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우 전쟁으로 직항이 뜨지 않고 있는데 내년 여름까지는 좋은 결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의미에서 현지인의 기고를 받겠습니다. 라오스 비엔티안은 한국의 ODA 업적과 뜻있는 한국인의 비정부기구(NGO) 등 기부 업적을 찾아보겠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고문·K-정책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