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13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혐의 재판에선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씨와 국무위원들의 모습이 담긴 대통령실 폐쇄회로TV(CCTV)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그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국무회의에서 계엄 선포를 반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CCTV에 찍힌 모습은 달랐습니다. 윤씨가 비상계엄 필요성을 말하자 그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문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했습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 혐의 사건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13일 오전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습니다.
특검은 이날 증거 조사에서 지난해 12월3일 오후 6시부터 다음 날인 12월4일 오전 10시까지 서울 용산 대통령실 5층 대접견실이 찍힌 CCTV 영상 일부를 재생했습니다. CCTV 영상에 찍힌 한 전 총리는 12월3일 오후 8시45분 무렵 대접견실에서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과 5분가량 대화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가장 먼저 도착한 국무위원입니다. 특검은 김 전 장관이 수사기관에서 “한 전 총리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 같다’고 말했다”라는 진술을 바탕으로 한 전 총리가 사전에 비상계엄 선포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전 총리 등이 윤씨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한 전 총리와 김 전 장관 외에도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등이 대접견실 옆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오며 문건들을 들고 있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겁니다. 이들은 대접견실에서 서로 문건을 돌려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이 윤씨의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논의하는 듯한 장면도 나왔습니다. CCTV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국무위원들이 대접견실을 떠나는 와중에도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은 둘이 남아 16분 정도 서로 문건을 주고받으며 논의했습니다. 이는 <뉴스토마토>가 지난 5월27일 보도한 "
(단독)한덕수, 계엄 전 포고령 확인…'대통령실 CCTV'에 찍혀" 내용과도 동일합니다. CCTV엔 두 사람이 문건을 보면서 대화하는 과정에서 웃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윤씨가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오후 10시18분 대접견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재생되기도 했습니다. CCTV에 따르면 윤씨가 비상계엄 필요성을 주장한 뒤 계엄 선포를 위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떠나자 한 전 총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특검은 “피고인은 비상계엄을 막기 위해 국무회의를 건의했다고 주장하지만 (CCTV에) 촬영된 행동은 주장과 너무나 다르다”며 “행정부 2인자인 한 전 총리 행위가 윤석열의 범행 결의를 크게 강화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4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영호 전 장관 등 법정에 선 국무위원들은 CCTV 영상에 관해 “기억이 안 난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다 재판장에게 지적을 받았습니다. 재판장이 CCTV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한 전 총리는 “기억이 없는 부분도 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이에 재판장은 “비상계엄은 그 자체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무총리로서 국민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을 반대했다”며 “좀 더 많은 국무위원들이 모이면 비상계엄을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모든 위원들이 비상계엄은 안 된다고 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은 “제가 질문 드린 건 그 내용이 아니다”며 “무장 군인과 국민들이 대치했는데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느냐”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이에 한 전 총리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국무위원들에게 주어진 국무회의를 통해 본인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라며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호 전 장관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CCTV를 보면서도 검찰과 재판장 질문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비상계엄 국무회의 당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계엄 선포가 너무 충격적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도 윤씨가 집무실에서 처음 비상계엄 선포를 예고할 당시 자리 배치 순서를 기억해 진술했습니다. 이에 재판장은 “자리 순서도 기억하는데 (계엄 관련) 문건은 왜 기억 못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김 전 장관은 법정에서 한 전 총리가 아닌 윤씨로부터 처음 비상계엄 선포를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 같다’고 말했다”는 수사기관 진술을 뒤집은 겁니다. 김 전 장관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착오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