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이 될 전망입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무역전쟁 위기에 몰린 미·중 양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화를 재개했는데요. 한·미 간 관세협상의 접점을 찾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젠 시 주석과의 담판에 시동을 건 모양새입니다.
관건은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까지 합의가 이뤄지냐 여부입니다. 일괄 타결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봤을 때 상호 관세율 조정에 몇 가지 합의 사안을 덧붙이는 '포괄적 합의'(빅딜)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지만, 관세율만 합의하는 '부분적 합의'(스몰딜)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양국이 어떤 사안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상황이 종료되는 '협상 결렬'(노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요. 세계 경제·외교의 질서를 좌우할 '세기의 담판'이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19일 중국 <신화통신>과 미국 <블룸버그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화상 통화를 했습니다. 허 부총리와 베센트 장관은 다음 주 말레이시아에서 예정된 회담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조율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17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을 2주 안에 만날 것"이라며 미·중 정상회담이 임박했음을 시사했습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오는 30일에 개최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①스몰딜=무역합의
일단 미·중 양국의 대화가 재개된 만큼, 정상회담까지 성사된다면 최소한의 합의안이라도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 만남인 만큼 미·중 정상이 거래 성사를 향해 나아가는 모양새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재로선 첫 타결의 의미로 무역 합의에 따른 상호 관세율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예고한 시점이 다음 달 1일로 APEC 정상회의 기간과 맞물린다는 점도 공교로운 대목입니다.
따라서 이번 만남에선 상호 관세율 조정과 같은 제한적인 합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를 들어 군사적으로 충돌할 위험이라든가, 기술 패권 경쟁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으로 적당히 주고 받는 거래로 끝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지적입니다.
앞서 미·중은 올해 네 차례의 고위급 무역 협상을 통해 상대국에 100%대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도 하고 유예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 통제를 대폭 강화했고, 미국은 중국에 대해 100%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관계 진전의 의미로 상호 관세율 조정부터 의견을 모을 것으로 보입니다. 통상 빅딜이 이뤄졌을 땐 미·중 정상 중 한 명이 상대국을 직접 방문했다는 점도 '스몰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②빅딜=무역합의+대만, 대중기술 통제
앞으로 10여일 남은 기간 동안 미·중 간 물밑 조율이 이뤄진다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나 빅딜을 주고받는 시나리오도 물론 가능합니다. 정상회담에서 상호 관세율 조정을 비롯해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관련 기술 통제, 희토류 수출 통제 등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의제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관세를 낮추고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중국이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를 정상화하고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을 철회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그동안 미·중 양국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핵심 문제들을 일거에 타결하는 방안입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전략으로 자주 쓰던 일괄타결 방식과도 같습니다.
중국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미국에 매각하는 것이 빅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에 대한 중국의 단속 조치도 빅딜에 포함되는 의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 역시 이번 회담에서 타결될지 주목됩니다. 중국은 '대만 독립 반대 선언'을 미국에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③노딜=무역 갈등 격화
미·중 정상회담이 '노딜'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마무리된다면 양국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중 양국 간 관세 논쟁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한·미 관세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양국의 관세 협상이 그대로 이어지는 데다가 대중 기술과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가 계속된다는 점에서 국제 정치와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입니다.
다만 미국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협상 결렬 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또 인플레이션이란 경제적 부담으로 미국이 중국과의 합의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중국 역시 치킨게임 양상이 장기화될 경우,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미국과의 상황 악화를 바라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