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박혜정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 타결되면서 자동차와 철강 업계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25%의 높은 관세 부담을 안고 있던 자동차 업계는 15%로 낮아지며, 수출 경쟁력 회복의 기회를 얻은 반면, 철강 업계는 여전히 50% 고율 관세의 벽을 넘지 못해 어려움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협상은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도 한국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산업별 체감 온도차는 뚜렷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연합)
30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는 전날 이뤄진 협상 타결 소식에 즉각 반색했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이 발표된 직후, 현대자동차그룹은 입장문을 내고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 타결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으로 노력한 정부에 감사드린다”며 “현대차·기아는 앞으로도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으로 내실을 더욱 다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일본과 유럽연합(EU)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미국 시장 경쟁을 이어왔습니다. 일본·EU는 미국과 15% 수준의 관세 협정을 체결했지만, 한국산 자동차는 25%의 관세를 물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시장 점유율 확대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관세 협상 타결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런 불이익을 털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관세 협상 타결 후 발효는 1~2개월이 소요된다”며 “한국은 12월 또는 내년 1월부터 발효가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어 “현대차의 올해 관세 비용 약 3조1000억원이 2026년에는 2조3000억원으로 78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망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정확한 평가를 위해선 합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담긴 문서가 나온 뒤에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우선 우려가 가장 컸던 자동차 품목 관세를 낮춘 데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반면 철강업계에는 시름이 깊어졌습니다. 이날 협상 결과 발표에서 50% 고율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철강·알루미늄 및 파생상품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어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품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 조치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이 관세가 단순히 철강 원자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변압기, 가전제품, 볼트, 너트 등 철강이나 알루미늄이 포함된 407종의 '파생 상품'에도 동일한 관세가 적용됩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해당 관세 대상 품목에 대한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약 118억9000만달러(약 16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번 협상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던 중소기업들도 낙심한 표정입니다. 대기업은 대응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수출 시장이 한정적이고 가격 경쟁력과 협상력 등이 부족해 미국의 조치에 더욱 취약합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번 무역 합의를 환영한다면서도 “철강·알루미늄 및 파생상품 관련 중소기업들이 대미 수출에 큰 어려움을 겪는 만큼 후속 보완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경쟁국들도 동일하게 50%의 관세를 부담하고 있어 불리한 처지는 아니지만, 부담은 여전하다”며 “미국 내 분위기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철강 도시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몰려 있어 철강 분야에서 한층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에너지 채굴 사업을 추진하면서 파이프용 철강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비교우위를 살려 협상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세은·박혜정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