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한국과 미국의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에 모여 경제협력과 대미 투자 현안에 머리를 맞댑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PFE(해외우려기업) 규제 강화 등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산업과 통상 부문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양국 간 우호를 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9일 업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오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삼성전자, SK, LG그룹 등 양국 정·재계 주요 인사를 초청해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과 리셉션을 개최합니다.
이번 행사는 지난 8월 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직후 열렸던 ‘워싱턴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의 후속 자리로, 러트닉 장관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기업 인사들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투자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미국 정부의 지원 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APEC 최고경영자(CEO)서밋 개회식 특별 연설에서 “한국과 굉장히 기술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며 “미국이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협력 의지를 밝혔습니다.
러트닉 장관 또한 지난 8월 워싱턴에서 진행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한국과 미국은 모두 안전한 공급망, 회복력 있는 산업, 세계 경제 전반에 걸친 경쟁력 강화를 추구한다”며 “더 많은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한국 시장에 더 많이 진출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경제사절단으로 참석한 우리 기업들은 1500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번 만남에서도 새로운 투자 발표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라운드 테이블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함께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주도하고 있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미국 측에서는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CEO를 포함해 인공지능(AI)과 IT, 에너지, 방산, 소재 등 미국 기업 주요 CEO들을 비롯해 알래스카 가스, 조선(MASGA), 원전(MANUGA), 희토류 공급망 등 분야별 최고경영자들이 자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라운드테이블 이후 이어지는 대규모 리셉션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의 참석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며 성 김 현대차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최수연 네이버 사장 등을 비롯한 한미 양국 기업인 1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8일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야외특별관에 마련된 ‘K테크 쇼케이스’ 전시를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매트 가먼 아마존웹서비스(AWS) 최고경영자가 함께 관람하고 있다. (사진=SK)
이들은 반도체와 AI와 같은 첨단 산업부터 알래스카 가스 개발 사업, 마스가(MASGA), 원자력, 희토류 등 전략광물 등 전략산업과 공급망 부문에 대한 협업 방안을 교류하는 등 양국의 협력 상황을 공유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한 의견을 나눌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는 700조 규모로 추진되는 오픈 AI의 초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참여하는 등 미국 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해 텍사스 테일러 공장 증설 계획을 협의한 바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들어 테슬라와 23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애플 아이폰용 이미지센서로 추정되는 칩 공급 계약도 맺었습니다.
앞서 대한상의 회장으로 APEC 최고경영자(CEO)서밋을 주도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나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개발과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논의했으며 미국 현지에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에너지저장장치 등 친환경·첨단산업 투자 등 다각적 협업을 추진 중인 상태입니다.
최 회장은 28일 APEC CEO 서밋 부대행사인 ‘퓨처테크포럼AI’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APEC은) 각국의 정부와 기업이 계속해서 새로운 협력과 투자, 지원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기회를 십분 살려 최대한 성과가 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현대차의 경우는 2028년까지 260억달러(약 38조)를 미국에 투자해 전기차·로보틱스·철강 등 미래 모빌리티 밸류체인 현지화를 강화할 방침이며,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등도 올해 미국을 수차례 방문하며 글로벌 세일즈로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APEC을 통해 교착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 국면에서 양국 간 신뢰 회복과 실질 협력도 모색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내 기업의 경우 배터리나 반도체 등 각 산업에서의 소재·부품 현지 조달과 수입 관세 완화, 미국 내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등 관세협상의 결과가 중요한 만큼 통상 절충안이 주요 화두로 오를 전망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참석 여부에 대해선) 상황이 유동적”이라면서도 “현재로서는 관세 협상에 따른 불확실성 해소에 주목하고 있고, 이번 정상회담과 라운드테이블에서 한미 협력의 결정적인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