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처는 이 대통령 '버티기'…'맞춤형 의전'도 한몫

'국익 최우선' 고수…트럼프 만나 담판
무궁화훈장 서훈…신라 금관 '선물 공세'
"돌발 변수 없었다…톱다운, 관료 움직여"

입력 : 2025-10-30 오후 6:06:12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노딜(No deal)' 예상을 깨고 '빅딜(Big deal)'로 성사된 한·미 관세 협상 합의 이면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승부수가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시간이 걸려도 합리적 결과에 도달할 것"이라며 관세 협상의 최우선 원칙을 '국익'으로 못 박았는데요.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버티기 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빅딜을 이끌어 냈습니다. 여기에 레드 카펫부터 무궁화 대훈장과 신라 천마총 금관 선물까지 '맞춤형 의전'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협상 잘하는 리더"…톱다운 담판으로 '빅딜'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향해 "관세 협상을 잘하는 리더이자 국가"라는 표현을 썼다고 30일 밝혔습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30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국제미디어센터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 분위기를 전하며 "선물도 화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각별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9일 만나 담판을 지은 한·미 관세 협상은 극적으로 성사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됐는데요.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 총 3500억달러(약 500조원) 중 현금 투자액을 2000억달러로 설정하고,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신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하고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천마총 금관 모형'. (사진=뉴시스)
 
그동안 양국은 대미 투자 방식을 두고 23차례의 장관급 회담을 가지며 지리한 '샅바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이보다 많은 실무진 협의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터라 한·미 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관세 협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익 관점의 협상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지난달 11일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어떠한 이면 합의도 하지 않고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고, 이달 23일 공개된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며 조급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담판을 지었습니다. 통상 실무진들의 물밑 협상 뒤 양국 정상들이 만나 매듭짓는 방식이 아니라, 정상 간 큰 틀의 합의 후 실무진이 세부적인 사안을 논의하는 식으로 막판 타결이 성사된 것입니다. 
 
'마스가 모자'부터 '금관'까지…트럼프 사로잡기
 
이번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 맞춤형 의전도 한몫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걷는 길에는 레드 카펫이 깔렸고, 21발의 예포 발사와 올드 팝 'YMCA'의 연주로 환영식을 꾸몄습니다. YMCA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선거 유세에 사용했던 음악입니다. 
 
이 대통령은 황금빛 훈민정음 문양 넥타이를 매고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으며, 정상회담 전 대한민국 최고 훈장인 무궁화 대훈장을 서훈했습니다. 장인이 20일에 걸쳐 만든 신라시대 천마총 금관 모형도 선물했습니다. 이는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를 황금빛으로 리모델링할 만큼 화려하고 과시적인 것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저격했습니다. 
 
황금빛 공세는 한·미 정상회담 오찬 식탁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갈비찜과 금장 브라우니가 올랐는데요. 저녁 특별 만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에릭 트럼프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술이 제공됐습니다. 
 
지난 8월 미국에서 가진 1차 한·미 정상회담 때는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받으며 긴장감 완화에 기여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조선업 협력 강화를 위한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관련 문구가 적힌 빨간 모자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논의하고 있다. 오른쪽에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문구가 적힌 빨간 모자를 들고 있다. (백악관 제공, 뉴시스 사진)
 
이번 국빈 방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인장이 찍힌 야구공과 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딜런 크루즈 선수의 친필 서명이 담긴 야구배트를 선물하며 화답했습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미국 측은 해당 선물에 대해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한국에 야구를 소개한 역사에서 비롯된 한·미 양국의 깊은 문화적 유대와 공동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전했습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아니면 미국 행정부 관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었다"며 "그런 점에서 톱다운 방식의 협상은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맞춤형 의전에 대해서는 "관세 협상에 결정타를 준 건 아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을 막는 요소로 작용하는 효과가 있었다"며 "한·미 정상회담은 변수 없이 마무리됐다"고 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한 야구배트와 야구공. 야구공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장이, 야구배트에는 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 소속 딜런 크루즈 선수의 친필 서명이 담겨 있다. (사진=대통령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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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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