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가운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를 둘러싼 각국의 ‘지원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대만 기업 TSMC가 사실상 독주하는 상황에서 자국 파운드리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국가 간 파운드리 측면 지원 경쟁이 가속하면서, 정부를 등에 업은 기업들의 주도권 확보전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일본이 반도체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자국 기업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신에 따르면 지난 2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오는 2027년까지 라피더스에 1조1800억엔(약 11조원)을 순차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라피더스는 도요타와 키옥시아, 소니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뭉쳐 설립한 파운드리 기업으로, 일본 정부의 누적 투자액은 이미 2조9000억엔(약 27조3400억원)에 달합니다.
미국은 자국 대표 파운드리 기업인 인텔을 돕고 있으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인텔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약 10%의 지분을 확보해 사실상 국영화에 가까운 조치를 취했습니다.
중국은 내수 중심의 고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자국 파운드리 기업을 보조하고 나섰습니다. 최근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중신궈지)는 공장 가동률이 90%를 넘겼고, 3분기 매출도 171억6200만위안(약 3조5570억원을)을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제재 이후 중국이 반도체 자립 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SMIC가 내수시장을 접수한 결과입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국 파운드리 회생에 사활을 거는 추세입니다. 한국 정부도 글로벌 빅테크와의 접점을 넓혀 국내 기업의 반도체 수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7월 정부와 함께 미국 출장길에 올랐고, 이후 테슬라와 애플의 파운드리 수주에 연이어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매년 조 단위 적자를 내던 삼성 파운드리는 2~3분기를 기점으로 반등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오는 2027년께에 흑자 전환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TSMC. (사진=뉴시스)
각국의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양상입니다. 해마다 인원을 감축하며 위기설이 돌았던 인텔은 18A(1.8나노급) 공정으로 반등을 노리고 있으며, 라피더스도 수년 내로 2나노 공정까지 기술력을 끌어올려 TSMC, 삼성 파운드리와 경쟁하겠다는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2나노 공정 수율을 높이면서 점진적으로 생산라인을 확대 중이며, 나아가 웨이퍼 가격을 TSMC보다 저렴하게 책정해 승부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파운드리 산업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TSMC의 파운드리 점유율이 70%를 넘기는 등 특정 기업의 독점이 장기화하면서 자국 반도체 생산력과 기술력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반도체가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한 만큼, 일정량의 자국 내 생산 라인을 유지하고 해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형성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 반도체산업이 호조이긴 하지만 메모리 분야에 편중된 만큼, 파운드리 영역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는 사실상 메모리 반도체만 잘하는 상황”이라며 “파운드리도 같이 성장해야 반도체 분야 전체가 커질 수 있다. 파운드리 분야는 한동안 확대되면 확대됐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