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김성현 KB증권 대표의 여섯 번째 연임이 전사 실적 둔화, PF(프로젝트파이낸싱) 충당금 급증, 거래소 제재 이력, 그리고 KB금융 내부의 세대교체 기류까지 겹치며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투자은행(IB)·자산관리(WM) 부문은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회사 전체 수익 구조가 뚜렷한 역성장을 기록하며 연임을 둘러싼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금융그룹은 27일부터 계열사 대표 인선 작업에 돌입합니다.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김성현·이홍구 KB증권 각자대표 가운데, 특히 2019년 취임 이후 다섯 차례 연임을 이어온 김 대표의 평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힙니다.
가장 큰 변수는 전체 실적 흐름의 둔화입니다. KB증권은 3분기 실적에서 순이익 160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7.56%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누적 기준으로도 흐름은 비슷합니다. KB증권의 올해 1~3분기 누적 순이익은 5024억원으로 전년 동기(5526억원)보다 9.08% 감소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006800),
NH투자증권(005940) 등 주요 대형사들이 모두 순익 증가세를 보이면서 경쟁사 대비 역성장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적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PF 충당금 급증으로 분석됩니다. KB증권의 PF 충당금은 지난해 3분기 누적 17억원에서 올해 1413억원으로 폭증했습니다. 무려 80배 이상 증가한 규모입니다. KB증권 관계자는 "시장 변동성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충당금 부담이 전사 실적을 직접적으로 압박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제 대응이라기보다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이 반영된 것에 가깝다"며 "PF 익스포저 관리 능력은 이번 연임 평가의 정중앙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업부 성과만 놓고 보면 성장세는 존재합니다. IB 부문 영업이익은 3668억원으로 전년 대비 31.4% 증가했고, WM 부문은 7289억원으로 14.4% 확대되었습니다. 리테일 고객 총자산 역시 20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4.9% 증가하며 시장 점유력도 강화됐습니다. 다만 전체 이익 흐름을 보면 IB·WM이 모두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했음에도 순익이 감소한 만큼 세일즈앤트레이딩(S&T)·홀세일·자기매매 등이 포함된 기타사업부가 전년 대비 부진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KB증권 분기보고서에서도 기타사업부는 주요 3개 사업부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감소 흐름을 보였고, PF 충당금 부담과 함께 트레이딩 변동성이 확대되며 손익 기여도가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IB랑 WM이 늘었는데도 전체 이익이 줄었다는 건 다른 사업 부문에서 빠진 폭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라며 "특히 변동성에 민감한 부문에서 손실을 얼마나 잘 막았는지가 이번 연임 평가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공개(IPO) 성과 역시 구조적 경쟁력보다는 대형 네트워크 기반 단일 딜 의존도가 높았다는 평가가 제기됩니다. KB증권의 올해 IPO 대표주관 실적은 8424억원인데, 이 중 2539억원이
LG씨엔에스(064400) 단일 딜에서 나왔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
LG(003550)그룹과의 네트워크 기반 수임이 KB증권의 IPO 존재감을 강화한 건 사실이지만 대형 딜 중심 구조가 장기적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기에 거래소 제재 이력도 부담 요소로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KB증권 S&T 부문 직원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3월 사이 장 마감 단일가 시간대 특정 종목을 반복 매매해 시세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며 '경고' 제재를 내렸습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종가 관여는 시장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내부 리스크 관리 체계를 향한 의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KB금융 내부의 세대교체 흐름도 김 대표에게 불리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양종희 회장은 취임 이후 손해보험·자산운용·저축은행 등 주요 계열사 수장을 대거 교체하며 조직 쇄신 기조를 강화해 왔습니다. 1963년생인 김 대표는 그룹 사장단 가운데 연차가 높은 편으로, 지난해 임기 만료 당시 연임에 성공한 계열사는 KB증권이 유일했습니다.
세대교체 흐름은 증권업계 전반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미래에셋그룹 창립 멤버이자 7년간 증권부문 CEO였던 최현만 회장이 용퇴했고, 장수 CEO로 꼽히던 최희문
메리츠증권(008560) 부회장(4연임),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5연임) 역시 잇따라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장기 집권형 CEO 시대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 체질이 빠르게 바뀌는 시기인 만큼, KB도 세대교체 흐름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적 둔화·PF 리스크·제재 이력·세대교체라는 네 가지 축이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며 "6연임이라는 상징성까지 감안하면, 이번 인사는 KB금융이 '안정'과 '변화'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보여주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KB증권은 제기된 우려들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KB증권 관계자는 "PF 충당금은 3분기에 집중 반영해 리스크 요인을 상당 부분 해소한 만큼, 4분기에는 실적 개선 여지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번 거래소 경고는 내부통제 미비나 고의적 행위가 아니라, 주문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판단의 문제로 보고 있다"며 내부 통제 차원의 중대한 사안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