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삼성전자와 SK그룹이 미국의 ‘인공지능(AI) 수출 프로그램’ 참여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두 기업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핵심 공급사인 동시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행보로 풀이됩니다. 한미 양국이 국가 차원에서 AI 협력을 강조하며 밀착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 인프라에 의존하게 되면서 독자적인 AI 생태계 육성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클럽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와 SK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산 AI 수출 프로그램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미 연방관보에 따르면 두 기업은 해당 프로그램과 관련해 외국 기업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두 기업은 특히 동맹국 소속 기업으로서의 기술 경쟁력을 강조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미국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이끌겠지만, 성공적인 프로그램에는 한국 같은 오랜 동맹들과 삼성 같은 신뢰받는 기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어필했으며, SK그룹은 “동맹국 기업의 참여는 AI 스택 전반에 걸쳐 동급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산 AI 수출 프로그램은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AI 리더십 장벽 제거’ 행정명령에 기반한 정책입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AI 혁신 가속화 △AI 인프라 구축 △AI 외교·안보 선도 등을 주요 가치로 삼았습니다. AI 패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도체와 서버, AI 가속기, 클라우드 등 전체 기술을 하나로 아우르는 ‘풀스택’ 미국산 AI 패키지의 해외 수출을 장려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이에 따라 두 기업도 컨소시엄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도 참여하는 핵심 기업이며, 한국과 미국 역시 ‘팍스 실리카’를 통해 반도체를 포함한 AI 전반에서의 협력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서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실물이 전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요 거래처가 미 빅테크 기업이란 점에서 선택지가 많진 않았을 것”이라며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협업하는 게 맞다”고 평했습니다.
다만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에 편입될 경우 국내 AI 산업의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옵니다. 지난 8월 국가정보원 유관 연구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미 AI 행동계획 발표 의미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통해 “한국이 미국 주도의 AI 공급망에서 일부 비교우위 품목에만 특화된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지 않도록 국내 생태계의 역할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며 “자율성을 모색할 수 있는 다자협력 영역을 식별하고 우리의 여건에 부합하는 AI 표준을 선제적으로 마련해가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이 AI 생태계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TSMC가 파운드리에 집중해 성장한 것처럼, 중요한 건 생태계 내에서 파트너로서의 역할”이라며 “국내 기업들은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에 있고, HBM은 AI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국내 기업도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