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정부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구조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소각 대상에 포함될 경우를 두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당 발의안 대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약 36조원 규모의 비자발적 자사주가 소각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취득한 자사주뿐 아니라, 합병·분할 등 경영상 필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보유하게 된 자사주까지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열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제3차 상법 개정안을 심사했습니다. 민주당은 해당 개정안을 이달 중 처리하기 위해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 2417곳 가운데 38.6%인 933곳이 자사주 소각 시 자본금 감소를 수반하는 구조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코스피 시장에서 33조3907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3조1882억원 등 총 36조원 규모의 비자발적 자사주가 소각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기업별로는 SK가 3조6813억원어치의 비자발적 자사주를 보유해 규모가 가장 컸으며, HD현대(1조9823억원), 셀트리온(1조748억원), 롯데지주(9030억원), 한화(5103억원) 등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자발적 자사주는 기업이 주주환원 목적이 아닌 인수·합병(M&A), 분할, 지주사 전환 등 구조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한 자사주로, 회계상 자본금에 포함됩니다. 이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자본금이 줄어드는 ‘감자(減資)’에 해당돼, 상법상 채권자 보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채권자 보호 절차가 개시되면 채권자는 대출금의 조기 상환을 요구하거나, 대출 조건 변경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현금 상환 부담에 직면하거나 금융 비용이 급증할 수 있습니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소각할 경우 오히려 기업의 재무 부담과 투자 위축을 불러오는 ‘밸류업의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석유화학, 철강 등 산업 구조 개편이 예상되는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담이 사업 재편 속도를 늦추고,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자본 운용과 재무 전략에 제약이 생기고, 자본금 감소에 따른 유동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특히 석유화학·철강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된 업종에서는 사업 재편과 투자 집행이 동시에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제단체들도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지난달 정부와 국회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해 합리적 개정을 요청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