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02월 6일 16:19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차그룹이 ‘CES 2026’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렸다. 현대차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산업 현장은 물론 가정용 영역까지 아우르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며 새로운 산업 지형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산업용 로봇을 넘어 AI를 탑재한 로봇이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들기 직전인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노동과 기술,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점검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로봇기술 확산이 고용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인간의 물리적 노동을 직접 수행하는 휴머노이드의 등장은 노동의 가치와 고용 시장의 지형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특히 세계 1위의 로봇 밀도를 기록 중인 한국사회에서 로봇은 일자리를 뺏는 '약탈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구 절벽의 대안이 될 '강철 동료'가 될 것인지를 두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현대차그룹의 피지컬AI '아틀라스'. (사진=연합뉴스)
팽팽한 기술 저지론과 가속론의 대립
최근 로봇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6일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30년까지 자동화와 인공지능(AI)의 영향으로 전세계에서 약 9200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약 30%가 자동화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로봇 도입이 일자리를 단순히 소멸시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쟁점은 총량보다 ‘어디에서 줄고 어디에서 늘어나며, 노동자가 이동 가능한가’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5~2020년 분석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근로자 1000명당 산업용 로봇이 6.6대 늘어날 때 전체 고용률은 약 0.55%포인트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로봇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성장과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 내면의 분배지표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로봇 도입이 늘어날 때 고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약 2.5% 상승하고 고용률도 높아졌으나,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은 4.5~4.9%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령별 격차도 뚜렷하다. 25~34세 젊은 층 고용률은 소폭 상승한 반면, 45~54세는 0.37%포인트, 55세 이상은 0.22%포인트 고용률이 감소했다. 결국 총량은 소폭 순증하지만 분배는 악화되는 이중적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술 발전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기술 저지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가속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저지론 측은 대량 해고와 고용 불안, 사회적 갈등 증폭을 이유로 속도 조절과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가속론 측은 글로벌 로봇 시장 규모가 2026년 기준 167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자동화를 늦추면 국가 경쟁력과 전체 고용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현대차(005380)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하자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이러한 대립의 단면이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기술 발달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며 '노동영향평가'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로봇 도입이 노동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도록 노사 간 합의된 조건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로봇밀도 세계 1위 한국의 직업 재교육 공백
한국은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1012대를 보유해 세계 1위의 로봇 밀도를 기록 중이다. 이는 독일(415대), 일본(397대), 미국(274대)을 압도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처럼 빠른 도입 속도에 비해 노동자의 재교육 및 전직 지원 체계는 "속도와 규모 모두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하청 노동자 등 취약계층일수록 자동화의 충격을 흡수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한 실정이다.
현장의 충격은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다. 자동화 설비 도입 이후 고졸 생산직 신규 채용을 과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는 제조업체 인사담당자들의 증언이 적지 않다. 이는 로봇 도입이 고숙련 인력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저숙련·중장년층에게는 일자리 감소와 재취업 난이도 상승이라는 장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실직 노동자의 사회보장 재원 마련을 위해 '로봇세(Robot Tax)' 도입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해 기업이 얻는 추가 이윤의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하고, 이를 고용보험이나 직업훈련 재원으로 쓰자는 논리다.
찬성 측은 사회적 책임 강화와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지만, 반대 측은 자동화 투자 위축과 글로벌 경쟁력 악화, 기업의 해외 이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정책 아이디어 수준의 토론이 중심이며 본격적인 제도 도입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주요국들은 이미 로봇과의 '공존 모델' 설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아마존,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물류와 공정에 로봇을 적극 도입하되, 로봇 유지보수와 운영을 담당하는 신규 직무를 신설하고 근로자 대상 '업스킬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로봇을 일자리 대체재가 아닌 노동 보완 수단으로 규정하고 고령 근로자의 신체 부담을 줄이는 데 활용한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인공지능법(AI Act)'을 통해 로봇 도입 시 근로자 대표 사전 통보와 노동 환경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는 규제 중심 접근을 택하고 있다.
특히 독일 등 제조강국의 '노사정 로봇 도입 상생 협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산업 4.0 전략 아래 노사정이 참여해 자동화 도입 시 대량 해고 대신 직무 전환과 교육을 우선하는 틀을 갖추고 있다.
결국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운용하고 제도를 만드는 '사람'에 있다. 현동진 현대차·
기아(000270) 로보틱스랩장은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한다면 우리 사회가 기술 기반의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위험하거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작업을 대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는 '코봇(Cobot)'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노동계의 상생 가이드라인이 필수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로봇 도입 사전 고용 영향 평가 도입 △노사정 협의 의무화 △재교육·전직 패키지 지원 강화 △로봇 안전 및 책임 규범 정립 등이 패키지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한 전문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로봇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혜택이 고숙련 노동자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라며 "로봇 도입 속도 경쟁을 넘어, 자동화로 창출된 부가가치를 노동자 재교육과 전직 지원 시스템 등으로 환원하는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