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일본 집권 자민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확장 재정과 성장 우선 기조를 앞세운 경제정책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강한 경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표방한 다카이치표 재정정책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릴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른바 '사나에노믹스'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확장 재정을 위해서는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일본의 재정 부담 확대와 국채시장 수급 악화 우려가 동시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엔화 약세와 일본 국채금리 상승(국채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일본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엔화와 동조성이 크게 높아진 원화가 불안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상 최대' 돈 풀어 경기 부양…닻 오른 '사나에노믹스'
9일 <NHK>·<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국가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온 전임 정부와 달리 확장 재정을 줄곧 강조해 왔습니다. 기존에는 자민당이 '긴축'을 중시해 왔으나, 향후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공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민당 승리가 확정된 이후 <NHK>에도 "제가 꼭 심판받고 싶었던 것은 재정정책을 크게 전환하는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라며 "특히 위기관리 투자와 성장 투자를 확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재정 정책은 '고금리·고환율·고물가'라는 '신 3고'로 요약됩니다. 이 같은 정책 배경에는 과감한 적극 재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역대급 추가경정예산안을 단행한 데 이어, 올해는 '강한 경제,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내걸고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올해 일본 일반회계 예산은 약 122조3000억엔(약 1140조36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입니다. 이번 총선 승리로 국회 통과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재정 집행은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했던 전임 정부와도 노선을 달리합니다. 그는 모자라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신규 국채도 약 29조6000억엔 규모를 발행할 예정입니다. 이 같은 정책 전환에 주식시장은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이날 오전 일본 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개장과 동시에 급등해 사상 최초로 5만7000선을 돌파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총선 이후 확장 재정과 전략산업 투자 확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는 평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일본 엔화·국채 약세 가능성…한국도 '동조화' 우려
다만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려온 일본의 국가부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은 빠르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위해서는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이는 채권 금리 상승과 채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36%에 달합니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미국이 120%인 것을 고려하면 두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규모 국채 발행 계획까지 더해지며 장기 국채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40년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4%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 국채금리 상승은 한국의 국채금리에도 상방 압력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국채금리가 오를 경우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의 자금 일부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다카이치 총리의 달러 대비 엔화 약세 기조를 유지하는 점도 원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통상 원화와 엔화는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데, 최근 들어 이 같은 동조화 흐름이 유독 눈에 띕니다. 실제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연방은행과 일본 재무성 등이 외환시장에 이른바 '환율 점검(레이트 체크·rate check)'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엔화 강세 흐름이 본격화했는데, 26일에는 달러당 154엔대로 떨어진 급격한 엔화 강세에 원·달러 환율도 1440원대까지 하락했습니다.
엔저 기조가 이어질 경우 원화 역시 약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단기적으로는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 여건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지난해 제로금리를 끝낸 일본의 추가 정책금리 인상도 글로벌 자금 이동 방향을 바꾸면서 한국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민혁 국민은행 연구원은 "일본 중의원 선거 직후 엔화 변동성에 주시가 필요하다"면서 "일본 정부의 재정 부담 강화 우려가 재점화돼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화될 수 있고, 이 경우 원·달러 환율도 상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미·일 재무당국의 개입 등에 따라 엔화 강세의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엔화의 변동성에 따라 원화도 큰 폭의 변동성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9일 일본 도쿄에서 보행자들이 10년 만기 국채, 장기 금리 지수, 엔·달러 환율이 표시된 전자 표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