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스완의 질투 : 소유를 위한 파괴적 M&A와 '승자의 저주'[전략]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제6회)1부 스완네 집 쪽으로 5화

입력 : 2026-03-06 오후 2:55:28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의 사랑」에서 스완의 사랑은 병적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이해나 공명이 아니라 점유를 기도하면서, 그 순간 사랑의 참극이 빚어진다. 사랑하는 여인 오데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녀의 과거를 캐는 이 병적인 집착은 사랑의 본질을 파괴한다. 스완이 결국 오데트와 결혼하기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그에게 남은 것은 신기루의 잔해뿐이었다.
 
"그녀를 소유하거나 (그가) 그녀에게 소유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삶과 생각, 그리고 기억 전체를 전유(專有)하는 것, 즉 온전히 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이었다 (Ce n'était pas de la posséder, ou d'être possédé par elle, qu'il s'agissait. C'était de se l'approprier tout entière, sa vie, sa pensée, ses souvenirs)."
—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 Du côté de chez Swann,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7, p. 272.
 
스완에게 오데트는 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반드시 장악하고 소유해야 할 자산으로 치환된다. 현대 경영의 전장에서 이와 가장 흡사한 심리적 기제는 적대적 M&A에서 발견된다. 피인수 기업이 가진 독보적인 역량이나 강력한 브랜드에 매료돼 벌인 일이,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채 강제로 품으려고 하고 질투 섞인 파괴적 소유욕으로 돌변하곤 하고, 마침내 자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기 시작한다.
 
PMI
 
필립 하스페라흐(Philippe Haspeslagh)와 데이비드 제미슨(David Jemison)의 1991년 저서 『인수 관리(Managing Acquisitions)』는 M&A를 재무적 거래에서 '인수 후 통합(PMI, Post-Merger Integration)'이란 역량의 통합으로 해석한 M&A 연구사의 중요한 고전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M&A의 진정한 가치가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어떻게 창출되거나 소멸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학계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얻었다. 적대적 소유욕이 지배하는 M&A는 필연적으로 세 가지 파멸적 증상을 동반하면서 기업의 생명력을 갉아먹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첫 번째 징후는 인적 자본의 이탈과 그에 따른 암묵지의 증발이다. 저자들은 피인수 기업의 조직적 자율성이 보호되지 않을 때 핵심 인재들이 가장 먼저 거부 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스완이 오데트의 영혼을 구속하려 들 때 그녀의 반응과 M&A의 현장은 판이하다. 기업의 핵심 인재들은 인수자의 강압적 통제와 문화적 이식에 직면하면, 오데트와 달리 자신의 노하우와 숙련된 경험을 챙겨 경쟁사로 떠난다. 실제로 2002년 HP와 컴팩의 합병에서 두 기업의 문화적 충돌을 견디지 못한 컴팩의 핵심 엔지니어들이 대거 이탈하는 바람에 기대한 기술적 시너지가 사라진 사례가 있다.
 
두 번째는 거버넌스의 마비와 기회비용의 폭증이다. 저자들은 적대적 공방전이 경영진의 주의력을 미래를 위한 가치 창출이 아닌 방어와 공격이라는 소모적인 투쟁에 매몰시킨다고 경고한다. '포이즌 필'이나 백기사를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자문료와 법적 비용은 기업의 미래 성장판을 닫아버린다.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인수할 때 벌어진 18개월의 진흙탕 싸움은 양사 모두에게 심대한 경영 공백을 초래했고, 결국 고객의 불신과 시장 지배력 약화로 이어졌다.
 
브랜드 정체성의 오염 또한 큰 걱정거리다. 하스페라흐가 강조한 보존형 통합 모델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대중적 브랜드에 강제 흡수되거나 그 고유성을 부정당할 때, 고객이 느끼던 브랜드의 '작은 선율'은 소음으로 변질된다. 1998년 독일의 럭셔리 브랜드 다임러와 미국의 대중 브랜드 크라이슬러가 합병했을 때, 다임러의 엄격한 위계 문화가 크라이슬러의 자유분방한 혁신성을 옥죄면서 양측은 화음아 아닌 불협화음에 직면하였다. 두 회사는 수십 조 원의 가치 손실을 입은 채 9년 만에 결별해야 했다.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옆에 무릎 꿇은 안티고네>, 1805년경. 요제프 아벨(1764–1818, 오스트리아).
 
휘브리스(Hubris)의 비극
 
리처드 롤(Richard Roll)의 '휘브리스 가설(Hubris Hypothesis, 1986년)'은 경영자의 오만이 시장의 냉혹한 객관적 평가를 압도할 때 발생하는 참극을 설명한다. '휘브리스(?βρις)'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잊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도를 넘은 오만'을 뜻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휘브리스는 언제나 파멸을 부르는 비극적 결함, 즉 하마르티아(?μαρτ?α)로 작용한다.
 
여기서 하마르티아는 본래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에서 유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에서는 영웅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판단의 착오나 성격상 결함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희랍어로 작성된 신약성서 텍스트에서 '죄'를 뜻하는 용어로 수용됐다는 사실이다. 신의 섭리나 도덕적 질서라는 정조준된 과녁을 인간의 오만으로 빗나간 상태를 상징한다. 경영학 맥락에서 최고경영자(CEO)의 휘브리스는 시장의 본질 가치라는 과녁을 빗나가게 만드는 하마르티아로 작동하며, 기업을 회복 불가능한 비극적 결말로 이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국왕 크레온은 휘브리스의 전형이다. 그는 자신의 법령이 신의 법이나 천륜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으며 안티고네(오이디푸스의 딸)의 간청을 묵살하고 타협을 거부한다. 이러한 그의 완고한 오만은 결국 아들과 아내의 죽음이라는 처참한 응징(Ν?μεσις)을 초래하며 그를 산송장으로 만든다. 
 
소설의 인물 스완 또한 확고하게 휘브리스적 인물이다. 오데트라는 존재를 자신의 환상 속에 가두려 한 휘브리스적 태도를 소설에서 일관되게 견지한다. 그녀를 사랑했다기보다 그녀를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자신의 권능을 확인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 속에서 스완이 겪는 정서적 몰락은 경영자가 오만한 확신으로 무리한 거래를 성사시킨 후 마주하게 될 미래의 모습과 닮았다.
 
승자의 저주
 
'승자의 저주'라는 개념은 1971년 케이픈(Capen), 클랩(Clapp), 캠벨(Campbell)이 멕시코만 석유 시추권 경매 분석을 통해 처음 제시했다. 정보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경매 승자는 대개 자산의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일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 승리한 직후 손실을 보게 된다는 이론이다. 경영학에서 승자의 저주는 M&A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불했을 때 발생한다.
 
스완은 온갖 사회적 수모와 질투의 고통을 견디며 마침내 오데트를 자신의 아내로 만든다. 그러나 승리(결혼)를 거머쥔 순간, 스완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다. 소설의 맥락으로는, 과오를 깨달았기에 역설적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가 해준(박해일)에게 남긴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는 대사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스완에겐 사랑의 아름다운 엇갈림이 아니라 승자의 저주에 가까운 상태가 주어진다.
 
"스완은 자신이 오데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자신의 고통스러운 호기심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Il ne s'apercevait pas qu'il n'aimait pas Odette, mais sa propre curiosité douloureuse à son égard)."
—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 Du côté de chez Swann,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7, p. 231.
 
경영자 역시 대상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그 기업을 쟁취하고 파헤치는 과정 자체의 호기심과 정복욕에 매몰되곤 한다. 이 강박적 소유욕이 경영사에서 재현된 결정판이 바로 2000년의 AOL-타임워너 합병이다. 당시 인터넷 서비스의 신흥 강자였던 AOL의 스티브 케이스(Steve Case)는 인터넷 인프라와 전통 미디어 제국 타임워너의 방대한 콘텐츠가 만나면 무적의 '디지털 컨버전스'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 있었다. AOL은 타임워너를 16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에 인수하며 세기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합병 직후 닷컴 버블이 붕괴하며 AOL의 수익 모델은 급격히 악화하였고, 추진 주체들의 장밋빛 전망은 재앙으로 변했다. AOL의 공격적이고 수평적인 문화와 타임워너의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구조는 단 한 순간도 융합하지 못했다. 2002년 이들은 990억 달러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연간 순손실을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이후 AOL은 분사되어 헐값에 매각되었고, 타임워너는 여러 주인을 거치게 된다. 경영자의 휘브리스가 어떻게 기업의 과거 유산과 미래 가치를 동시에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뼈아픈 '승자의 저주'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건강한 결합을 위한 '황금의 삼각대'
 
M&A 시장에서는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다. 많은 연구에서 비관적인 결과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M&A를 위해선 고려할 게 많다. 기본이 중요하다. 마이클 포터, 에드거 샤인, 에드워드 프리먼을 통해 기업 경영의 세 가지 핵심 축인 경제적 실체(전략), 내적 생명력(문화), 그리고 외적 정당성(이해관계자) 측면에서 성공적인 M&A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삼각대가 균형을 이룰 때 M&A가 약탈을 넘어선 공진화의 궤도에 접어들 수 있게 된다.
 
마이클 포터의 가치 사슬(Value Chain) 이론은 M&A의 경제적 당위성을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인 전략적 적합성을 제공한다. 시너지는 그저 덩치가 커지는 것에서 비롯하지 않고, 양사의 가치 활동이 결합하여 비용을 구조적으로 낮추거나 고객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때 발생한다. 
 
조직 문화의 대부인 에드거 샤인은 시스템 통합보다 마음과 습관의 통합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M&A 실패의 대부분이 문화적 충돌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샤인의 이론이 경영 현장에서 얼마나 사활적인지를 입증한다. 에드워드 프리먼의 이해관계자 이론은 M&A의 사회적 생존권을 다룬다. 주주 이익만을 앞세운 적대적 인수는 직원과 지역사회의 저항에 부딪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하면서 픽사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 픽사의 영혼과 창의적 자율성을 지켜준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M&A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성공의 서사 : 디즈니와 픽사의 '존중의 하모니'
 
2006년 디즈니의 픽사 인수는 이러한 거장들의 이론이 현장에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당시 디즈니의 밥 아이거 CEO는 퍼레이드를 지켜보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캐릭터가 모두 픽사의 것이라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스완과는 다른 경로로 접근했다. 픽사를 강제로 소유하려 드는 대신 픽사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 픽사의 영혼과 창의적 자율성을 절대적으로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고 인수가 이루어졌다.
 
전략 측면에서 디즈니의 강력한 글로벌 배급망과 마케팅 역량은 픽사의 독보적인 디지털 스토리텔링 능력과 결합하여 포터가 말한 차별화 우위를 극대화했다. 문화적으로는 에드거 샤인의 경고를 실천에 옮겨, 픽사 아티스트들이 디즈니의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도록 별도의 사옥과 독자적인 인사 시스템을 유지하는 등 파격적으로 처우했다. 나아가 디즈니의 정체성에 픽사의 혁신성을 수혈하는 역통합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정렬을 통해 아티스트들은 창작의 자유를 얻었고, 팬들은 더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만났으며, 주주들은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결과적으로 디즈니는 다시 애니메이션의 제왕으로 복귀했고, 픽사의 '작은 선율'은 디즈니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만나 전 세계를 울리는 장엄한 교향곡으로 존재를 과시했다.
 
[안치용의 Critique: 소유욕의 맹목과 경영의 품격]
 
스완의 비극은 그가 미학적 주체였음에도 사랑에 있어서는 독점적 소유주가 되려 했다는 데 있다. 그는 오데트의 아름다움을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로 인식하면서도, 정작 그녀의 삶을 자신의 장부 안에 가두려 했다. 이러한 양상은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경영진의 모순과 정확히 일치한다. 타사가 보유한 무형의 가치에 매료되어 인수를 결정하지만, 공격적인 획득 과정에서 그 가치의 원천인 자율성과 신뢰를 스스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휘브리스적 오만에 빠진 크레온 왕이 결국 자신의 왕국과 가족을 잿더미로 만들었듯, 경영자의 오만이 시장의 이성적 가치를 압도할 때 기업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승자의 저주'는 기업 경영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빈번하게 반복되는 인간적 비극이다. 스완이 오데트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평판과 가장 빛나는 시절을 허비한 것처럼, 현대인 역시 특정한 지위, 관계, 혹은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의 본질적 가치를 희생하곤 한다. 쟁취한 순간 마주하게 되는 허무함은, 그 승리가 상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아닌 결핍된 자아를 채우려는 "고통스러운 호기심"의 산물이었음을 증명한다.
 
경영과 인생 모두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과 성숙한 인간성은 소유하지 않고 영향력을 미치고, 지배하지 않고도 헌신과 사랑을 끌어내는 힘에서 나온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인수 대상 기업이나 관계할 타인을 점령해야 할 영토가 아닌, 함께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파트너로 대우하는 품격에 있다. 당연히, 함께 연주할 역량이 있는지 간파하는 혜안이 없으면 품격도 저절로 없어진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창석 기자
SNS 계정 : 메일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