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기자] 박근혜 정부가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장급 판사들의 사생활을 사찰했다는 주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제기됐다. 사찰 의혹이 사실이라면 삼권분립을 침해한 중대한 사태로, 대통령이 고위법관의 사찰 자료를 통해 사법부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국조특위 4차 청문회에서 “(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상생활을 사찰한 문건이 있다”며 “양 대법원장의 대단한 비위사실이 아니고, 등산 등 일과 생활을 낱낱이 사찰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이라고 폭로했다. 조 전 사장은 “삼권분립이 붕괴된 것이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인에 대한 감시와 사찰도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작가 이외수씨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조 전 사장은 또 “2014년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최성준 법원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내용을 포함한 사찰 문건이 있다”며 “부장판사 이상의 사법부 모든 간부들을 사찰한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당시 최 법원장은 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조 전 사장은 이날 오후에 청문회가 재개되자,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문건을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에게 제출했으며 김 위원장은 사찰 자료 원본 내용을 타이핑해 각 청문위원들에게 배포했다. 김 위원장은 해당 문건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작성 및 보고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조 전 사장이 제출한 문건에는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 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이라는 제목과 함께 양 대법원장이 등산과 관련해 해명하고 있는 정황이 담겨 있다. 아울러 최성준 당시 법원장이 “2012년 2월 현직 부임 후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부적절한 처신에다 올해 1월 대법관 후보 추천을 앞두고 언론 등에 대놓고 지원을 요청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측은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적잖이 놀란 모습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스럽고 심각한 문제”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 의혹에 대해 정치권은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한 중대한 사건”이라며 엄중한 수사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사찰에 불법 도·감청 등이 이용됐다면 각종 법률 위반이 수없이 나올 것”이라며 “특검 수사에 반드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대한민국을 70년대 군부독재시절로 돌려놓았다.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의 기본 정신마저 무시한 행태”라며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비판했다.
조 전 사장은 또 현직 부총리급 공직자가 최순실씨의 전 남편이자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윤회씨에게 7억원의 돈을 건네고 공직자 임명 관련 청탁을 했다는 문건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부총리급 공직자가 누구냐는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의 질문에는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현직에 있다”고 발언했다.
행정부 직제상 부총리급은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 감사원장, 국회부의장이 해당한다. 경제부총리와 사회부총리는 각각 유일호·이준식 부총리가 맡고 있다. 국회부의장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과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이 맡고 있으며 황찬현 감사원장은 2013년 12월 취임한 뒤 지금까지 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왼쪽)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