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회계법인, '영업정지' 중징계 받았지만…감사인 해임 1곳도 없어 '유명무실' 논란

의결 3월 넘겨 교체 불가능…당국 "올해 안되면 내년에라도"

입력 : 2017-04-0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보선 기자] 금융당국이 수조원대의 혈세가 투입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묵인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대해 1년 영업정지라는 중징계를 확정하며, 과실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안진과 기존에 계약한 기업들은 대부분 감사인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어서 이번 사태로 인한 기업의 감사인 해임 권한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묵인한 안진회계법인에 중징계 처분으로 명분을 챙겼지만, 비상장사에 대한 감사는 가능하도록 한데다 계약 1~2년차 기업들이 2017 회계연도에 즉시 감사인 해임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앰으로써 "솜방망이 제재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5일 금융위는 제6차 정례회의를 열어 안진회계법인의 2017 회계연도 신규 감사업무를 향후 1년간 금지하고,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의결했다. 지난달 24일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가 금융위원회에 안진회계법인의 업무정지 1년을 건의한 데 따른 최종 조치다.
 
이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은 금융위 의결일로부터 1년간 ▲상장사(코스피·코스닥·코넥스) ▲증선위의 감사인 지정회사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상 금융기관의 2017 회계연도 신규 감사업무를 할 수 없지만, 감사계약이 3년이 되지 않은 1~2년차 상장사의 경우 감사업무를 계속할 수 있다.
 
다만, 감사인 해임사유인 '소속 회계사 등록취소'가 발생한 만큼 상장사가 희망할 경우 3월말까지 감사인선임위원회 승인을 받아 교체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정작 감사인을 해임하겠다고 보고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걸로 확인됐다. 금감원 회계제도실 관계자는 "외감법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해임을 하더라도 별도로 (금감원에) 즉시 알려야 하는데, 현재까지 보고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기업이 감사인을 해임하고 싶다고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감사인 해임 의사를 밝힌 후 감사인으로부터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의견진술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 4월이 넘어가기 때문에 3월말까지 감사인선임위원회 승인을 받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이렇다보니 상당수 상장사들의 문의도 이어졌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이번에도 열흘내 의견진술서가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이냐는 질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IT업계 A사 관계자는 "감사인 해임이 가능하다고 해서 검토를 했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아 기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업계 B사 관계자는 "기존 감사인을 해임하거나, 신규 감사인을 선임하려면 최소한 10일 이상이 소요되는데 감사인을 해임하는 게 불가능한 조치였다"며 "(우리가) 안진을 해임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냐는 둘째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2017 회계연도 감사 계약은 물리적 기한 때문에 그대로 진행해야 할 것이고, 내년부터라도 원하면 감사인 변경이 가능하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답했다.
 
상장사협의회 회계제도팀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관련법규에서 조치하고 있는 시점이 3월말이어서 해임을 하려다가도 할 수 없는 기업들이 있었다"며 "다만 금융위에서 안진회계법인과 대우조선해양의 중징계를 내리는 과정에서 감사인 해임을 위한 해임진술서 확보 기한까지 고려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감사인에 대한 해임권한을 의무가 아닌 '옵션' 정도로 받아들이는 등 엄중한 감사에 대한 기업의 필요 인식이 낮은 것도 문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어떤 조치를 내릴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던데다 증선위 조치 후 짧은 시일내에 감사인을 해임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감사인과의 기존 관계도 있어 곤혹스러운 기업들도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안진 제재조치로 야기될 회사의 회계감사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협회별 상담센터를 설치해 이번 제재조치와 관련한 외부감사인과의 제반 갈등을 중재하는 한편, 오는 6일 '안진 제재 이후 시장안정화' 대책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김보선 기자 kbs726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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